포털 사이트에서 ‘안락사’를 검색하면 가장 상위에 연관 검색어로 ‘스위스 안락사’가 노출된다. 스위스는 외국인의 안락사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로, 2016년, 2018년에 이미 한국인 두 명이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더욱이 2019년의 한 보도에 따르면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스위스에서의 안락사를 준비 중이거나 대기하고 있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에서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가 안락사에 대해 취재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고지마 미나의 이야기는 NHK에서 <그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큰 화제가 되었고, 책 또한 아마존 재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계통 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을 앓는 고지마 미나는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겠다고 결심하고 스위스로 건너가 안락사를 실현하고자 한다. 저자는 고지마 미나뿐 아니라 죽음 가까이에 있는 환자와 의사, 간병인과 보호자들을 취재하며 각자가 지닌 죽음에 대한 단상을 소개한다. 죽음을 앞두고 인간은 왜 안락사를 원하는가? 죽을 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살아 있는, 살아 있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묵직한 질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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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어서
죽기로 하였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
2009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김 할머니’가 법원 판결에 따라 존엄사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국에서 생명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2018년부터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시행되었다. 2020년 7월 기준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누적 67만 명을 넘어섰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향후 질병 등으로 치료를 받더라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부족하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들과 그 수를 미루어 알 수 있듯, 개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선택하는 존엄한 마지막을 꿈꾼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존엄사법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전신 마비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 등과 같이 ‘사망 임박’이 아닌 사망단계에 돌입한 환자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존엄하게 삶을 마감하는 데 제동을 건다. 환자가 바라는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주도권이 여전히 의료진과 보호자에게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인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안락사’를 검색하면 가장 상위에 연관 검색어로 ‘스위스 안락사’가 노출된다. 스위스는 외국인의 안락사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로, 2016년, 2018년에 이미 한국인 두 명이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에서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가 안락사에 대해 취재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다계통 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을 앓는 고지마 미나는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겠다고 결심하고 스위스로 건너가 안락사를 실현하고자 한다. 미야시타 요이치는 고지마뿐 아니라 말기 암 환자와 종말기 치료 종사자, 그리고 ‘죽음’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20대 청년 등을 취재하며 죽음에 대한 단상을 소개한다.
화제의 NHK 스페셜 다큐멘터리
<그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제작,
실존 인물의 안락사를 다룬 르포르타주!
고지마 미나는 49세에 다계통 위축증을 진단받았다. 처음에는 평소보다 다리가 무겁고 쉽게 넘어지고, 물건을 잘 떨어트리고 발음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가벼운 갱년기 증상을 의심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고지마는 의사로부터 ‘정신은 멀쩡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체 기능이 점점 사라져 결국엔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병인 다계통 위축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죽지 않는 병이라서 다행이지 않나요?”
공공연하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께름칙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쉽게 ‘죽음’을 화두에 올리지 못한다.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죽음만이 검은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낭떠러지에 내몰린 환자들은 남몰래 안락사를 검색해보고 자살 사이트를 떠돌며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당장 숨이 끊어지지 않는 병이라고 해서 고지마 미나에게 ‘당신은 살아 있는 한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짊어야 할 삶의 무게는 어쩌면 죽음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울지 모른다. 인간이 살아 있음에도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려 하는 것일까?
“한편에는 저와 같은 병에 걸린 분 혹은 병명은 다르더라도 심한 불치병에 걸린 분, 증상이 꽤 진행되어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분도 계시지요. 어느 쪽이 더 맞고 틀렸다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떤 관점도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삶’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주변 사람도 엄청나게 고생시키며 살아가는 그 의미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162쪽)
《11월 28일, 조력자살》에서 저자는 안락사가 꼭 필요하며 법으로 제정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듯 저마다의 죽음의 방식이 있는 것이라 강조하며, 안락사를 죽음에 대한 하나의 선택지로서 제시한다. 고지마 미나는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서울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통번역을 업으로 삼아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왔다. 그녀는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병마가 앞으로 본인에게 가져올 파국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지마는 몸이 점점 굳어가는 와중에도 주체적인 자신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고, 그녀에게 가능한 미래를 계획했으며 절망적인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과감하게 스위스행을 결단한다. 독자는 저자 미야시타 요이치가 고지마를 취재하는 내내 느낀 불편한 감정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유쾌한 고지마가 안락사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구원일까? 아니면 꼼짝없이 누워 지내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구원일까? 확실한 답은 고지마만이 가지고 있겠지만, 죽음이란 남겨진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의 ‘조력자살’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선택하는 사람들
고지마 미나는 스위스의 조력자살 단체 ‘라이프서클’에서 안락사하기를 원한다. 라이프서클은 스위스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조력자살 단체인 ‘디그니타스’에서 일하던 에리카 프레지크가 독립하여 2011년에 설립한 단체다. 라이프서클에서는 연간 약 80건의 조력자살이 시행되며, 해마다 단체의 지명도가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의 안락사도 허용하는 국가이다.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 조력자살, 소극적 안락사로 나뉘는데,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생명을 ‘타인’이 끊는 것, 조력자살은 타인의 도움으로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이 있고 특히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치매와 정신질환자의 안락사도 허용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현재 소극적 안락사만을 허용하고 있다(「연명의료결정법」,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 한국에서 조력자살하는 것은 불법이나, 외국인의 안락사, 정확하게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시행하는 것은 스위스 국내법이 적용되어 위법이 아니다. 그렇기에 거동이 불편하고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위스까지의 여정을 감행하는 이유다.
《11월 28일, 조력자살》에는 고지마 미나뿐 아니라 안락사를 고민하는 말기 암 환자인 요시다 준(가명)과 하타노 히로시가 등장한다. 이들이 스위스에서의 조력자살을 결심한다고 하여 이후의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역만리 낯선 타국에서의 죽음까지 수없이 많은 장애물이 진을 치고 있다. 적지 않은 조력자살 비용,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는 목숨의 불씨를 담보로 한 불투명한 일정, 그리고 언어적 장벽이 그것이다. 통계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의 조력자살 실시자 수보다 아시아 국가의 실시자 수가 확연히 적은 것은 그 나라 제반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이유가 될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난관도 무시할 수 없다.
미야시타 요이치는 각자 다른 처지의 이들 세 사람이 안락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을 서사적으로 취재한다. 비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죽음을 두고 고지마와 요시다, 하타노가 주변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설득하는지 상세하게 묘사하며, 독자가 놓칠 수 있는 맹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또한 제3국의 환자들이 ‘죽기 전’에 어떻게든 스위스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묘한 아이러니를 직시하게 된다.
“내가 내 운명의 지배자,
내가 내 영혼의 지휘관”
이제는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할 시간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17만 명을 넘어섰다.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한 시기에 생애 정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케이크’의 회원 수가 5배가 늘었다고 한다. 생애 정리 서비스란 살아 있는 동안에 장례 절차나 재산 정리 등, 미리 죽음을 준비해 주는 서비스로, 비교적 젊은 2040층도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표되는 오늘날, 코로나19가 바꾼 삶의 풍조인 것이다. 감염병 사태로 우리는 죽음에 익숙해졌다. 죽음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완화되었고, 젊은 사람들도 생의 마지막을 고민하고 계획해보기도 한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암 환자 유튜버와 블로거도 부쩍 늘었고, 그들 또한 자신의 투병기를 적극 공유하며 구독자들과 소통하며 힘을 얻는다.
이 책에서는 암에 걸려 시한부를 선고받은 하타노 히로시와 완화 치료의인 니시 도모히로와 함께 ‘안락사’를 주제로 진행한 대담을 소개한다. 하타노 히로시도 안락사를 희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환자가 경험하는 답답함과 의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니시 도모히로는 의사로서 안락사에 반대하는 이유와 신체와 정신의 고통을 줄여주는 완화 의료의 현 단계를 이야기하며 좌중을 환기시킨다. 대담을 처음 시작할 때는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안락사 찬성에 손을 들었으나 대담이 끝난 후에는 쉽사리 손을 들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더욱 어렵고 복잡해졌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바로 지금, ‘죽음’에 대해 터놓고 발언하고 논의할 장(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다루는 것이 죽음을 경시하는 것인가? 죽음을 숭고하고 무겁게 다루는 것만이 생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일까? “각각의 죽음마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다면 다양성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 같다”(129쪽)는 말처럼, 남겨질 사람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본인이 선택하는 죽음을 긍정받으면서 본인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존엄을 지녀야 한다. 살아 있는, 그리고 살아 있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묵직한 질문을 건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