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한겨레 커버스토리_저자 인터뷰
- 2018-06-11
“페미 싫은 남학생님들, 밤길 무서워 봤나요?”
[토요판] 커버스토리
페미니스트 남교사 최승범
“저와 함께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안목이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제가 수업에 페미니즘 이슈를 종종 녹여내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입니다.” 강릉 명륜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승범 교사는 일상에서 만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슬그머니’ 페미니즘을 권한다. 그가 입은 티셔츠엔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Feminism Perfects Democracy)는 구호가 쓰여있다. 강릉/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릉 사람들도 강릉을 보수적인 도시라 한다. 강릉역에서 700m 떨어진 곳에는 고려시대인 1313년부터 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유교적 윤리 규범을 가르쳤던 향교 옆으로, 남자고등학교인 명륜고가 보인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15일 오후, 향교와 명륜고가 자리한 교동에 도착했다. 작은 ‘노란 리본’이 붙은 현관문 벨을 누르자 키 188㎝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남자가 나왔다. 명륜고 국어교사이자 강릉에서 나고 자란 ‘강릉 최씨’ 최승범(34)이다. 그가 입은 검은색 티셔츠에는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Feminism Perfects Democracy)는 구호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최 교사는 얼마 전,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을 권하는 책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썼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과정과 페미니즘으로 변화한 삶 그리고 ‘남성 호르몬이 폭발할 것 같은’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 내용 등을 담았다. 그에게 페미니즘은 ‘여성만큼이나 남성도 숨통 트이는’ 학문이자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현실을 객관화하는 도구다. 부조리를 인식하게 유도하고 불합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인내와 희생 없이, 양보와 포기 없이 누리는 삶을 꿈꾸게 한다. 우는 남자, 말 많은 남자, 힘없는 남자도 괜찮다고 토닥인다. 군대 가라 떠밀고, 데이트 비용과 집 장만에 부담을 주고, 아담한 키와 작은 성기에 주눅들게 하는 주체가 ‘김치녀’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남성의 삶도 자유로워진다.”(52쪽)
중학생 땐 외환위기를 목격했고 2002년 고등학생 땐 ‘대한민국~’을 외쳤다는 남자.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른 남자들에게 “함께 페미니스트가 되자”고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