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 이종산 "식물에게서 배운 밝은 쪽으로 나가는 법"
- 2018-08-24
이종산 "식물에게서 배운 밝은 쪽으로 나가는 법"
인간과 식물이 공존하는 일상 에세이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 펴내
소설가 이종산의 연애소설 『코끼리는 안녕』 에는 동물원이 나온다. 『게으른 삶』 에서는 ‘참치’와 ‘너구리’가 주인공인데다 수족관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장난처럼 다음 작품은 식물원을 배경으로 ‘정원 3부작’을 써야겠다는 말이 씨가 되어 첫 에세이집이 나왔다. “나는 뭔가를 돌보는 일에 소질이 없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 는 맨 처음 무언가를 길렀던 기억, 다른 존재와 우정을 시작하는 방법에서 나아가 ‘식물교’를 세상에 전하고 인간성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기르고 생기 있게 만들고 싶다. 자주 터전을 옮기는 계약직 생활과 자기 자신을 기르기도 벅찬 시대에서도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고 싶다. 배추에 딸려 온 개구리거나, 보일러실에 사는 이웃 고양이, 용기를 내서 산 하나의 화초가 될 수도 있다. 동적인 것에서 정적인 것으로, 제 전부를 내어주는 일에서 일부를 내어주는 이 동거 방식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화분 하나라도 삶을 공유하는 것들
출판사에서 먼저 에세이집 출판을 제안하셨다고요.
편집자님이 『코끼리는 안녕』 을 읽으셨었대요. 출판사에서 식물을 주제로 에세이를 기획하다가 ‘공원 3부작’을 써야겠다는 제 SNS를 보고 생각하는 방향과 맞아서 연락했다고 하더라고요. 일이 들어와서 일단 좋았고요. (웃음) 에세이 청탁이라서 새로웠어요. 항상 에세이 청탁이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한 편도 아니고 에세이집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처음 기획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함께 살아갈 것들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동물과 살아가기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동물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지만 화분 하나라도 삶을 공유하는 것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기획 단계에서 편집자님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구나 싶었죠.
처음 쓰는 에세이라 막힐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에세이집 자체를 처음 해서 기쁜 것도 있었지만, 제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정해진 호흡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집자님께 글을 보내겠다고 했어요. 원하는 톤이 무엇인지 서로 맞출 시간이 필요했고, 잘하고 있나 계속 확인을 받고 싶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쓰다 보니 괜찮았어요.
계절마다 무엇을 했는지 나와요. 식물이 자라나는 계절과도 비슷했어요.
식물이 계절에 너무 많이 영향을 받더라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게 당연한데 그걸 매일 눈으로 보니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식물을 이야기하다 보니 계절 이야기를 하게 되고, 쓰다 보니 기간이 길어져 올해 초봄까지 써서 사계절이 들어갔어요.
『커스터머』 도 그렇고, 이제까지 작품에서 이종 간의 관심이 많이 드러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도 ‘무심하고 게으르고 예민하며 이기적인 한 인간이 낯선 언어를 쓰는 종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일어난 일’(10쪽)이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소설도 드라큘라와 연애하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참치와 너구리의 연애였네요. 의식하지는 않았는데 에세이를 쓰다 보니 더 저 자신과 가까운 이야기를 하게 되고, 제가 다른 존재끼리 만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의식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다 쓰고 나서야 무엇을 썼는지 알아차리는 편이세요?
그런 것 같아요. 적어도 중반은 넘어가야 알아요. 에세이도, 소설도 그렇고요. 소설은 막연하게 얼개를 짜는데 그게 변해요. 제가 서사가 강한 작가가 아니다 보니까 얼개는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에세이와 소설을 쓰면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요.
이것도 당연한 건데, 제가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다는 게 제일 달랐어요. 에세이라고 해서 사실 그대로를 받아 적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에세이를 쓰면서 줄거리나 등장인물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저에게 자유로운 마음을 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