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
주경철
2015-05-04
336
153*225 mm
979-11-85585-24-6 (03900)
16,000 원

 

★ 2016년 세종도서(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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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이성의 시대에 벌어진 광기의 마녀사냥
서구 문명의 일시적 일탈이었나 아니면 필연이었나?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쳐 곧 찬란한 계몽주의의 빛이 온 세상을 환히 비추게 되는 근대 유럽에 휘몰아쳤던 ‘마녀사냥’의 광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녀사냥은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잠깐 일탈했던 예외적인 사건이었을까? 아니면 서구의 근대성에 이르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을까?

‘서구 근대사의 재해석’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주경철 교수는 이 책에서 마녀사냥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마녀 개념의 고대적 기원에서부터 중세에 서서히 발전하여 근대 초에 폭발하고 소멸하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 저자는 마녀사냥이 중세가 아닌 근대 초에 정점을 이루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서구 근대성은 진리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즉 최고의 선을 확립하기 위해 최악의 존재를 발명해야 했던 것이다. 빛나는 문명의 이면에 야만의 심연이 숨겨져 있었다.

이 책은 마녀 개념이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고, 현실 속에서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어떻게 수용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마녀의 지성사·문화사·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마녀’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되었나?

마녀사냥이라는 ‘광기’가 근대 유럽을 휩쓸었다. 밤에 짐승으로 변신하여 악마와 성관계를 맺고 그렇게 얻은 가공할 힘으로 사람을 죽이고 폭풍우를 일으킨다는 기이한 혐의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혹한 고문을 가해 마녀 혐의를 자백하게 하고 다시 더 많은 사람의 이름을 불게 만들어 희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마녀는 인류의 구원을 방해하려는 악마의 계획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악마의 학수인이라는 특별한 개념이다. 마녀가 헛된 망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악마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서기 1000년 이후부터다. 중세 유럽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가 지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귀신이나 요정, 특정 장소에 고착된 영들, 고대 이교 신들의 흔적들이 강고하게 잔존해 있었다. 이와 같은 초자연적 힘들이 물질세계에 실제로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마술적 세계관이 민중 문화 내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중세 중엽 이후 신앙과 이성의 담당자인 교회와 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정립하고 신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선을 수호하기 위해서 악을 억눌러야 했다. 지극히 사악한 존재는 지고의 선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고, 극단적인 마녀사냥은 권력을 강화하였다. 점을 치거나 불임을 치료해 주는 민간 신앙의 전파자들은 어느덧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렸다. 마녀사냥은 국가와 교회, 마을 공동체 간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며, 16~17세기에 이르러 하나의 광기로 유럽을 휩쓸었다.

 

근대 문명을 어둠의 세계로부터 역으로 규정한 마녀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파시 스트들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 사회 전체를 위험에 떨어뜨리는 마녀를 창안하고 동원한 것은 근대 초기 유럽 문명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근대 문명을 어둠의 세계로부터 역으로 규정하는 자신의 역할을 마친 후 마녀는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