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김두얼
2020-06-11
276
140*210 mm
979-11-85585-90-1 (03320)
1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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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인구와 출산, 재난, 교육 등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한

역사와 법제도를 아우르는 경제학자의 통찰!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는 경제사와 법경제학을 두루 전공한 저자가 십수 년간 지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묶은 칼럼집이다.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연구와 논문 저술로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밝혔다. “전공을 소개할 때면 ‘사람들이 잘 안 하는 분야를 연구하시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고 ‘경제사’를 ‘경제사상사’로 오해하거나 또 다른 전공인 ‘법경제학’에 대해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알리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그렇다면 ‘경제사’와 ‘경제사상사’의 차이는 무엇이고, 이름부터 생소한 ‘법경제학’은 무엇일까? 애덤 스미스, 케인스 같은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사상사이고, 사람들이 예전에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었는지를 경제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사다. 또 법경제학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람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범죄를 미리 예방하려면 어느 정도의 형량을 부과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애초에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고심하면서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집필했는데, 그 덕분에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에 수록된 50여 편의 글은 그 안에서 일종의 흐름과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또 글 하나하나가 시간을 타지도 않는데, 시론적인 글보다는 경제사와 법경제학을 소개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공을 들여온 저자의 노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책은 전체 7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삶과 죽음’에서는 출산, 인구, 사망에 관련한 문제를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풀어간다. 제2부 ‘빈곤과 풍요’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대해 이야기한 글을 모았는데, 경제성장을 평가할 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짚고 넘어간다.

이 책에서는 특별히 제3부 ‘재난과 경기 침체’를 다룬 부분이 눈에 띈다. 최근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인간의 모든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이 밖에도 삶에서 다양한 형태의 재난을 겪기도 하는데, 이런 재난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사례 연구를 근거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등 근대사회의 전쟁의 경우에는 종전 후 대개 4~5년 정도가 흐르고 나면 복구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1958년 무렵에는 경제수준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되었다. 또 20세기 역사상 가장 많은 폭격이 있었던 베트남전의 경우에도 지역별로 다른 폭격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약 40년이 지난 2000년대에는 각 지역의 발전 정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컬럼비아대 학교의 도널드 데이비스Donald Davis와 데이비드 와인스타인David Weinstein은 2차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이 지역 경제의 장기발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폭격 연구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연구는 폭격이 이루어진 도시가 일정 시간이 흐르면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결과를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아울러 2차대전 당시 독일에 대해 이루어진 연합군의 폭격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_제3부 재난의 경제학, 98~99쪽

 

반면에 감염병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와 다르게 지속적으로 평생에 걸쳐 나타난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창궐했는데, 그 해에 태아였던 1919년에 태어난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 결과 다른 연도의 출생자들보다 건강, 학업, 소득 등 여러 지표에서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영향은 태아 상태였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퇴역군인의 삶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신체와 정신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생에 걸쳐 소득과 건강 상태가 나쁜 수준에 머물렀다. 저자는 이처럼 재난의 종류에 따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층위에서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계속 이어지는 제4부에서는 시장, 제5부에서는 제도, 제6부에서는 법, 제7부에서는 교육을 각각 핵심 주제로 삼아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종횡무진 시공을 가로지르는

흥미로운 질문들이 솟구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저자의 흥미로운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부족함이 전혀 없이 살았을)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왜 가난한 백성들보다 더 짧았을까? 『춘향전』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당시 사회의 보편적인 혼인 연령이 잘 반영된 이야기일까? 영화 〈어벤저스〉와 〈킹스맨〉의 악당들은 왜 인류의 대량살상을 도모했을까?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경연 순서는 순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까? 명문 학교 출신이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은 질 높은 교육 덕분일까, 아니면 소위 말하는 ‘동문’ 효과 때문일까? 저자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질문에 대해 경제학자의 눈으로 매우 설득력 있게 답한다. 단순히 자신의 견해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증거를 데이터와 그래프로 제시하면서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그러면서 해외 학자들의 연구뿐만이 아니라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까지 소개한다.

 

혼인 연령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재미있는 대답을 제공한다.우선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는 셰익스피어가 허구를 창출한 쪽에 가깝다. 영국 인구사의 권위자인 앤서니 리글리Anthony Wrigley와 로저 스코필드Roger Schofield의 연구에 따르면,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 영국의 초혼 평균연령은 남자가 28~29세였고 여자가 26세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배경인 이탈리아의 경우 정확한 혼인 연령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영국보다 크게 낮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경북대학교 박희진 박사가 수집한 행장, 묘비 자료에 따르면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평균초혼연령은 남자와 여자 모두 16세가량이었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들의 초혼 연령 역시 사대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춘향전의 연령 설정은 문학적 허구라기보다는 당시의 생활에 가까웠던 셈이다.

_제1부 삶과 죽음, 23쪽에서

 

또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저자가 갖고 있는 역사 지식이다. 저자의 주 전공인 경제사인 만큼 역사적 사실들을 경제학적 시각으로 폭넓게 분석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의 제목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인 것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그저 역사적 사실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경제학자 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출산은 기본적으로 개인적 선택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는다면,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고민을 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출산율이 왜 이렇게 빠르게 하락하는지, 그리고 이것을 완화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학계에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법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재의 상황에만 너무 몰두하기보다는 다양한 각도에서 폭넓은 고찰을 시도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조선 후기 여성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출산의 장기적 추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실질적 이유를 굳이 들어야 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_제1부 삶과 죽음, 33쪽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는 경제사와 법경제학이 어떤 학문인지 궁금한 독자, 이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연구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풍경일지 엿보기를 바라는 독자들의 지적호기심을 채워 주고,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생각의 보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