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탄생
유승훈
2020-11-20
512
140*215 mm
979-11-90955-06-5 (03910)
2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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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부터 용광로까지
대한민국 최전선
부산의 탄생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도시, 부산. 부산시는 오늘도 김해 신공항 백지화로 급물살을 탄 가덕도 신공항 유치이슈와 내년 4월에 치러질 부산시장 보궐선거로 연일 소란스럽다. 비단 오늘뿐이랴. 인구 약 340만의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은 잠시도 쉰 적이 없다.
부산을 사랑하는 민속학자 유승훈이 풀어놓는 부산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이야기보따리는 우리에게서 애틋하고 짠하면서도 사무치는 감정들을 소환해낸다. 다채로운 이야기에 곁들인 실감나는 사진과 사료들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진짜’ 부산을 만나게 해준다.
작은 한반도 끝에 자리한 항구도시 부산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자 하루가 머다하고 온갖 일들이 일어났다. 개항기 부산은 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여 근대 문물의 거센 파도를 맞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과 가까운 위치 탓에 부산에 터를 내린 일본인들 틈에서 설움을 견뎌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톱질하듯 밀고 당기는 전쟁통에 밥그릇만 겨우 챙겨 떠밀려 내려온 피란민들을 받아들이고 피란수도로 기능한 장소도 부산이었다. 부산(釜山)은 제 이름처럼 대한민국의 가마솥이 되어 주었다. 가마솥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아주 특별한 도구였다. 뜨거운 장작불에 달궈진 가마솥은 그 안으로는 누룽지를 끓이고 밖으로는 방을 덥혔듯이, 부산 또한 역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외부의 뜨거운 변화와 아픔을 끌어안고 더운 숨을 뱉었다.
 
“굳세어라 부산아”
대한민국을 비추는 거울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부산은 어떻게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이 되었을까? 부산의 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운 좋게, 어쩌다 보니 높아진 것이 아니다. 부산의 지리적 특성과 퇴적된 시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지금의 부산이 만들어졌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6·25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빗속을 뚫고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을 임시수도로 공포했다. 부산이 도합 3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는데도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연구자들은 ‘임시수도’ 대신 ‘피란수도’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는데, ‘임시’라는 말에는 수도는 당연히 서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분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분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서울 공화국이다. 웅숭깊고 무구한 역사를 함뿍 품은 부산을 비롯한 지방의 역사를 단지 ‘일부의 역사’로 치부하며 뒷방 신세로 미뤄둬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서울뿐 아니라 치열했던 지방사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었다. 《부산의 탄생》은 그러한 지점에서 태어났다. 이 책은 부산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세대의 역사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
가장 먼저 세상으로 난 문을 활짝 열었던 부산에 가 보면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그때 그 시절의 상처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산은 매 순간 기죽지 않고 다시 우뚝 일어섰기에, 깊이 패인 옛 상흔을 어루만지면서 미소를 머금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 부산 아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이미 경부선이 깔려 있었고 국도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물류 산업의 대동맥이 되어 주었다. 경부성장축을 통해 바다와 맞닿은 부산은 ‘수출과 무역의 최전선’으로 입지를 다졌다. 부산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신발과 섬유산업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앞장섰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얘기다. 《부산의 탄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치열하고 숨 가빴던 뒷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는 빼곡하게 들어앉은 신발공장 안 여성 노동자들의 사진을 통해 24시간 쉴새 없이 가동되던 공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2교대로 근무했던 노동자들을 본다. 주택가와 흙길 옆으로 한창 공사 중인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보면 ‘이 거대한 공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새삼 탄복하게도 된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가파른 성장과 화려한 영광 이면에는 고된 노동과 이름 모를 희생이 있었다. 당신은 어떤 부산을 기억하고 있는가? 손안에 어떤 역사를 쥐고 있는가? 시계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반쪽 퍼즐을 가지고 미래를 재단하려 했던 건 아닌가 반추해보며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부산의 탄생》이 그러한 작은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올린다
 
부산을 떠올리면 여름 피서객으로 가득한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 시끌벅적하고 분주한 국제시장, 그리고 종일 큰 선박이 바쁘게 오가는 부산항의 이미지가 늘 함께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곳엔 예외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힘 있고 거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뒤로는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가 보이는 듯하다.
《부산의 탄생》은 현대, 근대, 조선의 부산을 톺아가며 이름 없는 이들의 모습들을 세심히 담아냈다. 삶은 늘 복잡다단하며 하나로 정의되기 어렵다. 세기를 거슬러 조선시대에도 삼포개항 이후 물밀 듯 들어온 왜인과 조선인 간에 이 평화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긴장도 있었지만, 형제, 이웃처럼 지냈던 모습이 공존하였고, 근대로 무장한 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던 전근대의 조선 한켠에는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고자 했던 의지가 드러나는 ‘초량왜관’이 있었다. 큰 흐름의 역사는 물살 한번에 작은 것들을 휩쓸고 지나가버리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는 건축물과 유물들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 부산은 근대 도시로 거듭났지만 가난한 조선인들은 소외되고 쫓겨났다. 그러나 산비탈과 변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거대한 억압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들불처럼 번졌던 독립만세의 함성은 현대로 이어져 어둡고 암울했던 유신체제 아래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으로 메아리쳐 돌아왔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오늘의 아픔을 본다. 그리고 과거의 이들이 어떻게 역경의 파도를 넘어왔는지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를 마주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건져 올린다. “옛 우물에서 새로운 물을 긷는다(舊井新水)”는 저자의 신념처럼, 단연코 《부산의 탄생》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굳건한 힘을 선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