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종합병원
신재규
2021-02-25
308
140*210(신국변형) mm
979-11-90955-09-6 (03330)
16,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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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현대인과 늘 함께하는 의료 서비스,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아무 문제가 없을까?

 

아마도 살면서 단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 대부분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도 병원에서 맞게 될 확률이 높다. 이처럼 현대인의 삶에서 병원과 의료 서비스는 매우 가깝고, 삶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평생에 걸쳐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료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는가? 단순히 불친절한 의료인의 태도 때문에 불쾌했던 일을 넘어 정말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문제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동네의원을 방문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암과 같은 중대한 질환이 의심되어 검사를 받고 치료하는 과정에서는 매우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국인의 종합병원》을 쓴 신재규 저자는 4기 췌장암을 진단받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방문하면서 경험한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환자보다는 의료공급자 중심”이었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보다는 “편의성”이 좀 더 강조되었으며, “임상시험 결과에 근거한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고 밝힌다. 실제로 저자는 약사이자 교수로서 미국의 의료와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환자의 보호자로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의료제도를 비교하고,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외래진료, 처방과 조제, 입원치료, 의료 인력의 교육과 수련, 건강보험 등 이슈에 따라 적절한 시스템을 골라 개인적으로 경험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를 비교하고,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돌봄을 위해 의료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그 방향을 고민한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개인의 경험을 넘어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특정 질환의 투병 과정이나 완치 경험을 다룬 책에서 병원이나 의료진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종종 언급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한 책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경험하면서 발견한 이슈들을 가능한 한 시스템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가령, 의료 과실의 경우, 개인의 명백한 실수가 아니라면 “여러 사람이 관련된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다고 사례를 통해 밝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신생아 네 명이 시트로박터 프룬디(Citrobacter freundii)균에 오염된 주사 영양제를 맞고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주사 영양제를 신생아에게 사용할 때 따라야 할 매뉴얼이 없었거나 혹은 매뉴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지키는지 병원 차원에서 정기적인 점검과 분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특히 개원 이래로 한 병의 영양제를 여러 신생아에게 나누어 맞추는 관행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이를 주사 영양제 투여에 관한 병원의 정책으로 여기고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사건을 법적으로 판단할 때, 병원이 신생아들에게 주사 영양제를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는지, 개선하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그렇게 해야 건강 관련 종사자들이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개인의 잘못에만 무게를 둔다면 시스템의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되어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

프롤로그, 12쪽

 

이 밖에도 진단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 과실, 약물 중복처방으로 인한 약화 사고, 환자 간호 시스템을 비롯한 돌봄 문제 등등 다양한 부분에서 발견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미국의 병원과의 비교를 통해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가족이 입원하면 그 자체가 환자 보호자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스트레스이다. 또 환자 보호자는 나처럼 간호에 대한 교육과 수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환자 자세 바꾸기, 소변 계량, 투약 등을 맡기는 것이 환자를 안전하게 돌보는 것일까? 환자 보호자가 이 과정에서 실수를 해서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법적인 책임을 질까? 가령, 환자 보호자가 경황이 없어 2시간마다 환자의 자세를 바꾸지 못해 욕창이 생겼다면 이때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환자 보호자인가 아니면 병원인가?

_간호사는 늘 피곤해, 216쪽

 

무엇보다 어머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 다른 의사에 의해 중복처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즉, 물혹 시술을 한 큰 병원 의사는 어머니가 일주일 전에 정형외과에서 아세클로페낙을 처방받은 줄 모르고 이와 비슷한 쎄넥스캡슐을 처방했다. 만약 어머니가 약사에게 두 약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비슷한 종류의 약 두 개를 동시에 복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고령이고, 위염 병력이 있기 때문에 위장관 출혈 위험이 다른 사람보다 좀 높을 수 있다. 따라서 두 약을 동시에 복용했다면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_내가 먹는 약은 제대로 처방된 약일까, 160쪽

 

잘 아프기 위해서

환자와 보호자가 꼭 알아야 할 것들!

 

이 책에서 저자는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밝히는 것을 우선했지만, 어머니의 치료 과정을 기록하면서 환자로서 또 보호자로 알아야 할 점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몸의 이상 증상에서부터 췌장암을 진단받기까지의 과정과(제1부) 진단 이후에 암을 치료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제2부), 그리고 완화치료와 호스피스 서비스에 이르기까지(제3부) 질병을 관통하면서 깨달은 점들을 세세히 풀어놓았다.

 

완화치료는 전이성 암환자들의 치료 효과와 삶의 질을 높여 준다. 그리고 완화치료는 암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할 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이성 암이라는 것을 진단받을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가져온다. 따라서 병원들은 종양내과와 완화치료과와의 협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전이성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암 교육 프로그램에도 완화치료를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 환자와 가족들이 완화치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를 바로잡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_전이성 암환자의 완화치료, 147~148쪽

 

지금까지 의료 현장은 환자에게 무언가를 더 해 주는 것에 익숙하다. 이는 뭔가 더 할수록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검사 하나라도 수술 하나라도 더 하고 약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한다. 물론 의료 행위를 더 할수록 금전적으로 보상을 더 많이 받는 ‘행위별 수가제’도 그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도 검사든, 시술이든, 수술이든, 약이든, 하나라도 더 받아야 좋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이런 ‘하나라도 더’라는 식의 의료 행위는 부작용 위험을 증가시키고, 오히려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_자식의 도리, 262쪽

 

우리는 고통 없이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 무병장수를 누리다가 어느 날 밤, 잠을 자는 사이에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행운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무거운 질환을 진단받고 나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 일이 눈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일로만 느껴진다. 그러다가 큰 병을 맞닥뜨리면 일상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한국인의 종합병원》은 개인 차원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중대한 질병이 닥쳤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사회 차원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 더 좋은 제도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개선해야 할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