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는 알아보고, ‘신라젠’은 거르는
현명한 투자자가 될 수 있을까?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 2위, 꿈의 항암제 펙사벡(Pexa-Vec) 개발사로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껏 높였던 ‘신라젠’은 아직까지도 거래정지 상태이다. 임상시험 실패로 15만 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1만 2,100원까지 곤두박질쳤고, 2020년 5월 한국거래소에서 거래정지 처분 결정이 난 이후로 1년 가까이 거래정지가 풀리지 않고 있다. 소위 ‘개미’라고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대부분을 들고 있는데, 그 숫자가 무려 17만 명에 달한다. 투자자들은 한국거래소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에서부터 릴레이 시위, 대규모 집회에 이르기까지 주식 재개를 위한 시위를 이어 나갔다. 이 사람들은 어쩌다 연일 길거리 시위에 나서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과거 K-바이오 대장주였던 ‘신라젠’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처럼 바이오 분야 관련 주식은 다른 분야보다 변동성이 훨씬 크다. 《바이오 투자의 정석》은 이처럼 주가 등락이 크고 빈번한 바이오 분야에 뛰어드는 개인투자자가 ‘성투’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바이오 투자의 ‘핵심 포인트’를 단숨에 이해하도록 속속들이 집어 준다. 상한가와 하한가를 번갈아 맞는 바이오 주식의 변동성 자체를 공략하는 것도 수익을 내는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바이오-제약산업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면 그런 차트 분석 기술은 ‘잡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일반인이 바이오-제약 애널리스트와 같은 전문가 수준으로 바이오 분야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자산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 지식은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좀 더 확장하면 바이오 주식시장에서 대박을 치는 ‘신의 한 주’를 알아는 안목을 기르려면, 바이오 투자의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이오-제약산업 전반을 이해하는 데 있다.
도대체 바이오-제약산업은
무엇이 다르길래 돈이 될까?
이 책에서 저자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바이오-제약산업의 본질을 최대한 투자자의 관점에서 전하려고 한다.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최근에 높은 성장을 보이고 있는 바이오-제약산업이 왜 돈이 되고, 유망한 분야인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한다. 실제로 바이오-제약 분야에 많은 자본이 모이고 있지만, 제약회사와 일반 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약품이 일반 소비재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는 별로 없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규제와 특허, 의료보험으로 예를 들어 설명한다.
가령, 제약산업은 국가 규제에 강력히 통제되는 산업이라 엄격한 의약품 생산 기준, 까다로운 의약품 허가 절차, 마케팅 제한 등의 진입장벽이 존재하는데, 신규 시장진입자에게는 더 가혹하고 기존 제약사에게는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 주는 안락한 울타리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보험이 제공하는 대규모 할인 덕분에 의약품 소비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규제기관이 원하는 수준의 생산 설비를 갖추기도 까다롭고, 신약이 아닌 제네릭의약품조차도 허가를 받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 또 제3자가 제품 선택권을 가져 발생하는 마케팅 방식의 극단적인 제한은 웬만한 규모를 갖춘 제약사가 아니면 뛰어넘기가 힘든 최악의 진입장벽이다. 시장에 새로 허가된 신약이 출시되어도 기존 약이 모두 대체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고, 자금력을 갖추지 못한 신생 제약사가 가까스로 신약을 허가받는 데 성공하더라도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실적을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_규제로 쌓아 올린 진입장벽, 27~28쪽
공공의료보험은 어떤 항목에 보험 적용을 해 주는지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이 ‘정해진 원칙’보다는 ‘시민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지속 가능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정적인 재정 확충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망할 수도 없는 것이다. 국가재정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과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막대한 할인. 이것이 바로 제약회사가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_의료보험이라는 든든한 지갑, 66쪽
이어지는 2부에서는 바이오의약품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서 밝히면서, 기존 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이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왜 시장에서 주목받는지를 들려준다.
신약개발사는 ‘어떻게’ 돈을 벌고
‘얼마나’ 돈을 벌어들일까?
바이오-제약 분야는 전통적인 기업분석 관점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검토했을 때는 절대로 투자하면 안 될 회사로 보이지만, 개발 중인 신약이 성공하면 엄청난 이윤을 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투자자들이 현재의 재무재표는 옆으로 제쳐 두고, 미래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언제 돈으로 환산되는지는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기대했던 수익과 실제 수익이 달라 실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3부와 4부에 걸쳐 신약개발사가 돈을 ‘어떻게’ 벌고, ‘얼마나’ 버는지를 각각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제약사가 신약개발에 성공하고 난 뒤에 생산과 판매까지 모두 맡을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 전체를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제약사는 일부 글로벌 제약사에 국한된다. 따라서 나머지 중소 제약사는 ‘기술이전’ 형태로 수익을 낼 수밖에 없는데, 기술이전 협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지금 당장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국내기업인 한미약품의 경우,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 주가가 치솟았지만 결국 이 계약은 백지화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바꿔 말해 결과가 나쁘면 언제든 권리반환을 해서 계약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미 수령한 업프론트 계약금과 마일스톤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기술이전 비용은 백지화된다. 실제로 이런 일이 국내 대형제약사인 한미약품에서도 일어났었다. 한미약품은 2015년 말, 당시로는 최대 규모인 39억 유로(약 5조 2,800억 원)의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키고 한 달여 만에 주가가 2배로 치솟았다. 계약금만 4억 유로(약 5,400억 원)를 받은 초대형 계약이었는데, 결국 2020년 중순에 계약 당사자인 사노피가 기술반환을 하며 나머지 계약금은 물거품이 됐다.
_후기 개발 단계의 기술이전 계약 전략, 153쪽
바이오-제약산업은 ‘약’만 팔지 않는다,
‘기술’을 파는 기업도 있다!
흔히 바이오-제약산업을 떠올리면, ‘약’을 개발하고 만들어 파는 기업만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의료기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도 있고, 다른 제약사가 개발한 의약품을 대신 생산하는 CMO 기업도 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기존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도 등장했다. 바로 ‘플랫폼(platform)’ 기술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플랫폼 기업이다. 애플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같은 스마트폰 운영체제 플랫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플랫폼, 국내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플랫폼처럼 제약업계에서도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 의약품에 적용하여 다수의 후보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기반기술, 그러니까 개별 의약품이 아닌 여러 의약품에 범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고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중에는 의약품 개발을 위한 기술도 있고, 개발된 의약품을 우리 몸에 더 잘 전달하거나 흡수시키기 위한 기술 등이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와 같은 플랫폼 기술은 범용적 적용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한 번의 기술이전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응용이 가능하므로 추가 수익을 또 낼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의약품 개발과 큰 차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신약개발사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체 개발 CHO 세포인 S-CHOice 역시 생산 플랫폼 기술의 일종이다. 특정한 항체의약품 생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항체의약품이든 세포주 내에 넣어서 생산할 수 있고, 항체의약품의 생산 효율 자체를 높인 것이니 범용성 있게 계속 사용할 수가 있다. 아직 이처럼 실용화되진 않았지만, 대장균을 이용한 바이오의약품 생산 쪽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약이 아닌 기술을 파는 플랫폼 기업, 215쪽
《바이오 투자의 정석》은 각 장의 끝부분에는 ‘사례 노트’라는 코너를 만들어 두고 해당 장에서 다룬 내용과 관련된 대표적인 기업에 대한 분석을 담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독자들이 실제 투자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였다. 책에서 언급했던 기업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바이오-제약회사에도 대입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저자가 안내하는 ‘바이오-제약산업의 본질’을 따라가다 보면, “1차 임상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완치된 환자가 있었다”라는 식의 황당한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투자하려는 기업 혹은 이미 투자한 기업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식견을 갖추게 될 것이다. ‘삼성바이오’를 알아보고, ‘신라젠’은 거르는 안목은 특별하거나 비범한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바이오-제약산업을 꿰뚫어 보는 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