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런던을 뒤덮은 폭격기의 포성
찬란하고도 끔찍했던 시대의 초상을 그린 걸작
《폭격기의 달이 뜨면: 1940 런던 공습, 전격하는 히틀러와 처칠의 도전》은 윈스턴 처칠이 총리로 취임한 1940년 5월부터 1941년까지의 영국 안팎의 정세를 세밀하고 생동하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 에릭 라슨은 전작 《화이트 시티》를 비롯하여 《이삭의 폭풍(Isaac’ Storm)》, 《데드 웨이크(Dead Wake)》, 《야수의 정원에서(In the Garden of Beasts)》 등의 저서로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에릭 라슨은 9.11 테러를 기점으로 ‘전시의 런던(영국)과 시민들과 지도자들’에 대해 궁금증을 품고, 영국국립문서보관소, 처칠문서보관소, 미의회도서관의 육필원고부 등 수많은 기록보관소의 자료를 조사하여 그 시대를 참신하게 풀어냈다. 이 책은 특별한 관점으로 짜인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역사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참혹했던 전쟁 중에도 그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과 미래를 기대하고 기약하던 환상이 존재했다. 《폭격기의 달이 뜨면》에서 에릭 라슨은 허망한 폭력 틈새로 살아남은 은밀하고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능란하게 펼쳐보인다.
전격하는 히틀러와 처칠의 도전…
그리고 루스벨트
1940년, 영국을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았다. 윈스턴 처칠의 총리 취임 첫날 아돌프 히틀러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했고, 폴란드와 슬로바키아는 이미 무너진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 처칠은 모든 객관적인 지표가 그에게 ‘기회’가 없음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영도하에 영국이 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영국과 화이트홀에 불어넣어야 했다. 처칠이 넘어야 할 난관은 영국 국민과 각료와 지휘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그러한 믿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처칠은 이 전쟁의 저변에서 대치하는 힘의 성격, 다시 말해 영국이 독일을 완전히 척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미국의 산업 역량과 병력의 힘을 빌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처칠 주변의 인물들의 말과 기록들을 통해 처칠의 독보적인 리더십과 그것이 발현되는 지점들을 면밀하게 포착하여 그리고 있다. 또한 영국과 독일, 미국 지도자의 관점과 전략에 따라 전세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이 선사하는 큰 재미다.
히틀러는 제아무리 처칠이라도 계속 자신에게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인정할 것이라고 믿었다. 히틀러가 보기에 서부전선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은 가망이 없소.” 히틀러는 육군총참모장 프란츠 할더에게 그렇게 말했다. “전쟁은 우리가 이겼소. 이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오.” 히틀러는 영국이 협상에 응할 것이라 확신하여 그의 군대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국방군 40개 사단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처칠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스웨덴 왕과 바티칸을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간접적인 평화 제의를 여러 차례 건네 상대의 의중을 떠봤지만 모두 거부당하거나 묵살되었다. 히틀러는 평화 협정을 위한 어떤 실마리도 놓치기 싫어 루프트바페의 수장 헤르만 괴링에게 런던의 민간 지역은 절대 건들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침략은 고민이 많이 되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도 장고를 해야 할 신중한 문제였다. (180쪽)
미국이 참전하기 전까지 영국이 독일의 공습에 최대한 버틴다는 가정에는 막강한 육군과 강력한 해군, 그리고 마지노선을 보유한 프랑스가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발을 묶고, 독일이 쳐들어올 모든 길목을 차단해준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나 처칠이 총리로 취임한 지 2주도 안 되어 프랑스군은 독일 기갑부대에 격파당하고, 영국의 전략은 공허로 빠져들고 만다. 영국은 독일의 공격 규모를 합리적인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동시에 미국으로부터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받고 참전을 이끌어내야 했다.
패배주의로 빠질 수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처칠이라는 동력기를 정비한 영국은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처칠은 항공기생산부를 신설하고 전투기 생산과 승무원 훈련, 항공기 공장 방어에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1940년 6월, 독일의 공습에 직면하여 거의 매일 밤 끝도 모르고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폭탄들을 견뎌야만 했던 끈질긴 영국본토항공전의 서막이었다. 전쟁은 독자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피해와 죽음의 참상 이면에는 기지를 발휘하고 용기 내어 끔찍했던 날들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 존재했다. 이 책은 그러한 틈새를 비집고 당신이 알지 못했던 장면들을 내보인다.
폭격기의 달이 뜨는 밤과
잊히기 쉬운 이야기들
야간 폭격에 대비해 등화관제를 시작하면서 런던은 빛을 잃었다. 집과 상점은 물론 차들과 기차, 신호등까지 조명을 제한하여 아주 적은 빛만이 통과할 수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어둠 속에서 도시의 사람들은 달의 위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볼록하게 차오르는 달이 뜨는 밤이면 희미한 달빛에도 폭격기의 목표물이 될까 두려워하며 보름달을 ‘폭격기의 달(bomber’s moon)’이라고 불렀다.
무기 공장의 공구계측원 레너드 대스콤은 일터로 가는 길에 “주택의 지붕들 위로 비추는” 달빛이 아주 화려하다고 생각했다. 달이 밝아 굳이 차의 헤드라이트를 켤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신문도 읽을 정도였다. 정말 멋진 밤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새로 선출된 시장 존 “잭” 모즐리의 딸 루시 모즐리는 회상했다. “바깥이 정말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이렇게 환한 11월 밤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모즐리 부부가 저녁 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았을 때 가족 중 한 사람이 달을 가리키며 “크고 정말 끔찍한 ‘폭격기의 달’”이라고 한마디 했다. (96쪽)
히틀러는 1940년과 1941년 사이에 4만 5천 명의 영국인의 목숨을 앗는 폭격을 벌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카만 폭격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영국 상공을 가득 메웠다. 시민들은 거리를 걷다가, 소풍을 나왔다가 머리 위로 치열하게 펼쳐지는 공중전을 지켜보았다. 스핏파이어, 허리케인, Me 109, 스투카 폭격기가 상공에서 사활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스포츠 방송 중계하듯 내보내는 방송국도 등장하였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사무실에 있기보다는 전쟁터로 나가고 싶어 했다. 단연 전투기 조종사가 인기였다. 시민들은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이면 출근을 했다. 두려움보다도 더 괴로운 것은 밤새 울리는 공습경보와 폭발음으로 인한 불면과 피로감이었다. 폭격을 맞아 잿더미가 된 건물 지하에는 클럽을 방문한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언제 죽을지는 미지수였으나 영국 어딘가에서 누군가 죽을 확률은 100퍼센트이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간신히 비껴간 폭탄을 보며 오늘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여느 때보다도 생생한 삶이었다.
《폭격기의 달이 뜨면: 1940 런던 공습, 전격하는 히틀러와 처칠의 도전》은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다. 전쟁사에서 주요한 사건들은 익숙할지 모르지만, 에릭 라슨은 발표되지 않았던 일부 정부 보고서, 처칠의 개인비서인 조크 콜빌과 처칠의 어린 딸 메리가 기록해 온 일기들, 전시에 국가 차원에서 생활상을 기록하라는 임무를 맡았던 매스옵저베이션 일기기록원들의 자료를 토대로 혼란하고 장담할 수 없으며 어려웠던 그 시대를 재구성하였다. 탁월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처칠의 습관과 성격이 드러나는 에피소드, 급박한 전시 상황에서의 뒷이야기, 사람들의 일기에서 발견되는 재치와 농담, 그리고 평범한 고민들이 처참한 상황 속에서 저마다 힘을 가지고 빛난다.
1940년 런던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죽음이 저변에 깔려있었음에도 공포에 압도당하지 않고 나름의 하루하루를 가꾸며 매일 다시 깨어나, 2021년의 우리가 경험하는 아수라장보다 훨씬 극한의 상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냈다. 모든 것이 파괴되던 때의 공포에 직면하였던 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독자들은 통찰력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