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한 현생인류의 친척
네안데르탈인에 관한 단 한 권의 책!
《네안데르탈: 멸종과 영원의 대서사시》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치밀하고 꼼꼼한 안내서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듯이 인류라는 계통수의 굵은 가지에서 밀려나 초라하게 자리 잡은 종족이 아닌, 광활한 시공간을 무대로 생존했던 뛰어난 호미닌이었다. 저자 리베카 랙 사익스는 현대의 첨단 과학기술과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베일에 싸인 네안데르탈인의 삶과 사랑, 예술, 죽음에 관해 디테일하게 재구성했다. 21세기의 고고학은 별 특징 없는 뼛조각으로부터 한때 삼류로 취급받던 ‘이종 간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하게 하였고, 한 줌의 동굴 먼지에서 4만 년 전 살아 숨 쉬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 정보를 얻는 것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오늘날, 정적인 발굴지의 유물들은 우리 앞에서 새로운 풍경으로 전환되며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은 지난 한 세기부터 지금까지의 네안데르탈인 발굴의 역사와 수천 개의 학술 연구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통합하여 완성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책이다.
160여 년 전 처음 발견된 이후로,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족보에서 탈락한 종족”에서부터 “최고의 호미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별명으로 불려 왔다. 《네안데르탈》은 ‘얼어붙은 황무지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벌벌 떤 몰골’로 따라붙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끈질긴 프레임을 일축하며,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하고 엄청난 기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30여 만 년 동안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현생인류의 친척 네안데르탈인을 소상하게 소개해 보인다.
네안데르탈인의 삶과 사랑, 예술
그리고 죽음에 관한 위대한 발견
현재 지구에 남은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로 단일종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종도 변종도 없이 홀로 남았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골격이 크고 더 큰 뇌를 가졌던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에 절멸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명쾌한 해답 없이 인류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45만 년 전에 등장한 인류종으로, 처음 그들은 사람속(Homo genus)으로 인정받기까지 일련의 시련을 겪었다. 19세기 서양에서 네안데르탈인을 ‘인류의 멸종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과학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심오한 파장을 일으켰는데, 새로운 인류의 발견은 성서적 해석에 입각한 서양의 세계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격렬한 논쟁도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중세 이후 미지의 대륙과 천체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발견을 통해 지식인들에게 종교적 설명에서 벗어난 철학과 지식의 재구성이 계속해서 요구되고 있었다.
21세기의 고고학은 출발점에서 많이 벗어나 빅토리아 시대 미래학자의 판타지에 더욱 가까워졌다. 초기 선사학자들이 확보했던 것은 먼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는 돌과 뼈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전임자들이 존재조차 몰랐던 방법으로 일한다. 잉크 스케치 대신 레이저 스캔이 발굴지 전체를 근사하게 그려 내고, 전문가들은 한 세기 전의 전문가들이 발견할 것이라 꿈꾸지 않았던 대상을 연구한다. 물고기의 비늘과 깃털의 미늘(feather barb)에서 개별 가정의 소사(小史)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통찰은 모종삽의 귀퉁이를 벗어나 현미경의 렌즈 밑에서 생겨난다. (180쪽)
21세기의 고고학자들은 ‘이미 발굴된 것을 다시 발굴하러’ 동굴로 들어간다. 확보된 수만 개 내지 수십만 개의 유물은 연대측정법, 3D 스캐닝, 동위원소 분석법 등을 통해 4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삶을 다시 그려 낸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특별한 네안데르탈인 문화를 규정하는 돌 인공물인 석질(lithic)은 그들의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매우 풍부한 원천이다. 뼈와 돌에 새겨진 스크래치와 마모흔, 의도를 가지고 깎이거나 다듬어진 흔적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정신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대형동물과 소형동물을 사냥하고 해산물과 식물을 채집하여 섭취한 그들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 인간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이 사냥감을 추적하고 도축 및 처리한 방식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협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좋은 안목으로 고품질의 돌을 골라 사용자의 몸에 맞게 잘 만든 도구를 오래 휴대하며 사용하면서 간혹 재활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통해 실험가이자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현재, 사하라사막 이남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1.8~2.6퍼센트의 네안데르탈인 DNA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먼 과거에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이종교배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때 광활한 대륙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를 마주쳤다. 그들이 눈앞에 선 낯선 인류를 비록 새로운 종일지언정 ‘사냥할 짐승’이라 생각하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혼혈아들은 자신이 태어난 문화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다시 그들의 자손을 거느렸다. 그리고 자손들은 또다시 자라나고 자손의 자손을 낳아 길렀다. 네안데르탈인은 ‘무력하게 멸종을 기다린 종족’이 결코 아니었으며, 그들과 호모 사피엔스의 만남은 종의 멸절이 아닌 ‘생존과 재탄생’의 방법이었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현생인류에게 던지는 장엄한 질문
협동과 이타심, 상상력, 장인정신과 미적 감각은 호모 사피엔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명백하게 틀렸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그들이 살던 세계를 이해하고 탐구한 ‘최신형 인간’이었다. 수십만 년 후에 발굴된 돌과 뼈에서 그들의 창의적인 기술과 인지능력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네안데르탈인은 호기심이 풍부했고, 광대한 스텝-툰드라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며 살아남았으며, 무엇보다도 엄청난 기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30여만 년 동안 생존하였다.
현생인류는 늘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에 대하여 집착해 왔다. 우월감을 숨기지 않고 “살아남을 운명이었기에 살아남았다”고 자아도취하거나, 유일무이한 특별한 인류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숱한 ‘그렇지 않은’ 증거들을 외면하던 시절도 건너왔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로 넘어가기 위한 길목에 자리 잡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아니었다.
믿기 어려울 만큼 최근까지 전 세계에서는 호미닌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유라시아에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인도네시아의 왜소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 floresiensis, 일명 ‘호빗’), 그리고 다른 잠정적인 아시아계 고인류(이를테면 호모 루조넨시스(H. luzonensis))가 있었고, 아프리카에서는 호모 날레디(H. naledi)가 다른 미확인 고인류의 전위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지어 네안데르탈인에 대해서도 연구자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들 앞에 놓인 커다란 난제는 갈수록 늘어나는 매우 다른 종류의 정보들을 취합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유전학을 신체적 다양성과 연관시키고, 그들이 생산한 문화와 관련하여 이 둘을 이해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624쪽)
인류에게는 멸절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이 존재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우리에게 존재의 필멸성을 다시금 직면하게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육체적 소멸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으나, 지금도 피부 아래 흐르는 피와 그들의 DNA에는 멸종한 초월자들이 남긴 절반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네안데르탈》은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님을 강력하게 주지시킨다.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한다면 12월 31일이 끝나기 몇 분 전에야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슬그머니 등장할 뿐이다.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네안데르탈인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시간의 심연 속에서 그들이 제기하는 장엄한 질문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