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옥혜숙·이상헌
2022-05-23
264
122*188 mm
979-11-90955-60-7 (03810)
1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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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에 만나서 결혼 30주년을 맞기까지, 옥혜숙과 이상헌의 지난 세월을 따라가는 에세이다. 제네바에서 톡탁톡탁 적어 내려간, 선하고 정다운 이야기가 독자를 맞는다. 열심히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실천하고, 또 치열하게 투쟁한, 그저 모든 것이 다 좋았고, 때로는 그래서 어쩔 줄 몰랐던 열뜬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 걸음 한 걸음 펼쳐진다.
 
 
사람이 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여기, 열한 살에 만난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만났던 순간을, 그 남자아이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부산 항구 뒤편으로 몰래 숨바꼭질하듯 자리 잡은 봉래초등학교. 우린 거기서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거기 있었는데 우연히 마주쳤다. 나의 아버지는 외항선원, 그 아이의 아버지는 동네 경찰이었다. 이렇게 생계로 이어진 동네에 초등학교는 그곳뿐이었다. 아이들도 얼마나 많았는지, 학교로 가는 좁고 휘어진 골목, 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 마루바닥이 쉼 없이 삐걱대는 교실은 늘 인산인해였다. 그 많고 많은 아이들 중에 우리는 하필 그 나이에,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5학년 8반.
먼지 탓인지 소음 탓인지 모르겠다. 첫 기억이 분명치 않다. 그 아이는 분명 거기에 있었는데, 내 눈에 쏙 들어온 것은 언제인지 모르겠다. 불치병 같은 망각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런 일생일대의 기억을 망각의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기억은 이렇다. 그 아이는 작은 걸음으로 매일 조금씩 내게 온 것이다. 낮게 밀려오는 바닷물처럼, 팔짝거리며 고무줄을 뛰어넘듯이, 어느 순간 그 아이가 내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11쪽)
 
그 여자아이는 어땠을까요?  
 
“그 아이가 내 맘속에 들어온 것은 그의 눈빛 때문이다. 열한 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날카로운데 믿음직스럽고 어딘가 벌써 철든 애어른 같았던 눈빛. 아무튼 장난기 가득한 또래의 여느 남자아이들과는 달랐다. (…) 그렇게 애만 태우다가 결정적으로 내 마음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담임 선생님이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쪽지에 적어내면 짝을 시켜준다고 했다. 그러나 담임은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나는 분명히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냈는데 왜 내 짝은 우리 반 일등 코흘리개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13쪽)
 
두 사람은 가까이 있었지만,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러나 서로를 발견한 것, 이 찬란하고도 눈물겨운 여정의 시작점에 섰다는 것, 그 오래고 숱한 발자국이 모여 이렇듯 한 권의 책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파도처럼 굼실굼실 다가옵니다. 이제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 여자아이는 옥혜숙, 그 남자아이는 이상헌입니다. 이상헌은 ‘옥혜숙의 남편’으로 소개되는 것에서 그쳐야 하지만, 이 지면에서는 끝내 소개 글 두어 줄을 더하려 합니다. 이상헌은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동정책을 연구해서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으며, 디아스포라 이코노미스트로서 바라본 풍경을 한국 사회에 부치는 편지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에 담기도 했습니다. 
 
 
흔들리는 세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
 
책은 열한 살에 만나서 결혼 30주년을 맞기까지, 두 사람의 지난 세월을 따라가는 회고록입니다. 기억은 제각각입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었다고 해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리라는 법은 없지요. 함께 걸은 길, 같이 만든 발자국에 대한 나와 너의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허우적대던 걸음, 씩씩했던 걸음, 주춤했던 걸음 그리고 들뜬 걸음. 돌이켜보면 아련하고, 또 아득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돌아가보아야, 온 길을 안다”고 옥혜숙과 이상헌은 힘주어 말합니다. 두 사람이 만들었던 발자국에 다시 새로운 발자국을 보탠 작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는 따로 적으면서, 같이 적었습니다. 제네바에서 톡탁톡탁 적어 내려간, 선하고 정다운 이야기가 독자를 맞습니다.
 
 
모든 반짝이는 것은 간절하다
그때 알았다
 
한편 책은 우리를 오래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합창〉 심포니를 신호탄으로, 두 사람이 고등학생이 되어 재회하면서 책은 주저 없이 사랑을 말합니다. 열심히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실천하고, 또 치열하게 투쟁한, 그저 모든 것이 다 좋았고, 때로는 그래서 어쩔 줄 몰랐던 열뜬 두 사람의 이야기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정면으로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아니, 전속력으로 달려옵니다. 그때의 그 감정은 정확히 기억나는데, 감정을 가꾸었던 텃밭에 대한 기억은 아득한 당신에게 달려옵니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붙잡았던 그 시절로, 각별했던 그 시절로 우리를 이끄는 손짓에 응답해주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