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사랑에 관한 과학자의 언어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낭만과 상실, 관계의 본질을 향한 신경과학자의 여정》은 ‘신경과학자가 사랑에 관해 쓴 이야기’이다. 저자 스테파니 카치오포는 사회적 관계와 감정을 연구하는 권위 있는 신경과학자로, 이 책에서 자신의 사랑 이야기와 과학적 연구를 유연하게 오가며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37살까지 독신주의자였던 스테파니는 사랑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임에도 그녀의 부모님처럼 서로에게 완벽한 짝을 찾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쓸 바에야 일과 연구에 정성을 쏟는 것에 만족했다. 그녀는 언제나 과학에 헌신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상하이에서 열린 학회에서 우연히 존 카치오포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이 180도 바뀌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가장 크고 깊게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학자보다는 시인에게 달려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어 한다. 이는 사랑이 너무나 주관적인 경험이고, 게다가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사랑이 나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스테파니는 아리송하고 모호한 언어로 쓰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 대신, 풍요로운 읽을거리와 최신 뇌과학 및 행동과학 연구들에 기반한 통찰을 제공한다. 또한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을 확장시켜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현대 과학이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소상하게 설명한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사랑을 지속시키는 요소, 사랑의 효과, 사랑을 잃은 후의 슬픔을 헤쳐나가는 방법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스테파니의 문장들이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 여겨지는 사랑이라는 환상과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상실의 고통으로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사랑이 만고불변의 진리?
사랑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증거들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운명적이고 아주 희귀한 사건인 것처럼 그려져 오곤 했지만 스테파니는 사랑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며, 심지어 우리의 뇌는 ‘사랑을 하도록’ 진화했다고 강조한다. 사랑은 우리가 ‘하겠다’ 혹은 ‘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양가 있는 음식과 운동, 깨끗한 물만큼이나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초기 인류는 커다란 몸집이나 날카로운 발톱, 빠른 스피드를 가진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나약하고 취약했다. 그러나 인류가 현재까지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처음, 인간은 침팬지와 거의 같은 크기의 뇌를 가졌었지만 타인과 서로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뇌는 더 커지고 주름 잡혔다. 호모사피엔스는 사회적 기술을 통해 상호 협력하면서 공감하고 유대하였고, 실수를 통해 빠르게 배워 나갔으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구축한 ‘사회’는 결과적으로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한 인류종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사랑은 자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스테파니는 그러기엔 뇌는 단호하게도 매우 구체적인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심지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같은 형태의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스테파니는 연구를 통해 사랑이 뇌에서 감정을 관할하는 변연계와 보상 체계로 이루어진 영역을 촉발하는 것은 물론, 개념적 사고와 은유적 언어, 자아의 추상적 표현 등에 관여하는 고차원적인 뇌 영역 또한 강렬하게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사고방식이기도 함을 의미했다. 또한 사랑은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잠재력을 끌어내 줄 뿐 아니라 회복력과 면역력, 뇌의 반응 속도도 향상시켰다.
하지만 단순히 파트너가 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이와 같은 사랑의 덕을 보는 것은 아니다. 유대감이 적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는 뇌에 아주 티끌만큼의 영향을 줄 뿐이다. 스테파니는 사랑의 이점을 누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파트너와 맺는 관계의 질과 만족도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렇다면 연결되지 않고 고립된 사람들의 뇌는 어떤 양상을 보일까? 그것이 저자의 이어지는 질문이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뇌는 혐오 신호(aversive signals)라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우리 몸은 배고픔과 갈증, 통증과 같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이러한 혐오 신호를 보내어 신체를 보호하도록 만든다. 외로움(loneliness) 또한 이러한 혐오 신호의 일종이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위협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경계하게 만든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초기 인류는 무리 지어 다니며 살았기에 무리에서 혼자 동떨어지면 위험에 처했다. 뇌의 이러한 경고는 빠른 판단과 주의력으로 나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외로운 현대인들은 정글이나 허허벌판에 위태롭게 있지는 않는다. 대부분 집에 틀어박혀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일 공산이 더 크다.
스테파니와 존 카치오포는 이를 ‘외로움의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외로움이 오히려 사람을 더 뾰족하게 다듬어 의심하고 경계하도록 만들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기에 좋은 컨디션으로 안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로움의 위험성을 연구한 저명한 신경과학자 존 카치오포는 ‘외로움은 전염성이 있고 유전될 수 있으며 담배만큼이나 치명적’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외로움은 신체를 긴장 상태로 대기시키고 투쟁-도피 반응을 유발한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량이 치솟으며, 이러한 상태가 오래 유지될 경우에는 불규칙한 수면 습관과 높은 혈압, 저하된 면역력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역시 사랑이었다.
독신주의자였던 스테파니는 존을 만나 일터에서건 집에서건 언제나 함께하며 꿈 같은 결혼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존이 침샘암으로 결혼한 지 7년 만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치 ‘또 다른 나’처럼 느꼈던 남편의 죽음으로 스테파니는 외롭고 고된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녀는 가슴 저미는 상실감과 비애로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사랑’에서 앞으로 또 한 번 나아갈 힘을 건져올렸다. 가족과 친구들의 위로와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로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홀로 남은 자신이 아닌 진정한 나에게 집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도 회복력을 찾아냈다. 스테파니는 ‘두려움이란 행복과 마찬가지로 뇌 안에서 화학물질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는 다소 과학자다운 생각으로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이 될 것을 선택한다.
그 순간, 두려움이란 행복과 마찬가지로 우리 뇌 안에서 화학물질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해도 말이다.(269쪽)
팬데믹은 사람들을 강제로 가두었고, 일터와 사회에서 고립된 이들은 외로움이 가져온 파괴적인 힘을 직면해야만 했다. 스테파니의 촘촘하고 치밀한 연구이자 그 기록인 이 책은, 사랑과 외로움이 우리 뇌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스테파니의 이야기와 환자들, 각 분야 연구자들의 여러 사례를 통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황하거나 속수무책으로 마음에 끌려다니는 것을 멈추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스테파니가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말이다.
삶을 롤러코스터라고 한다면, 자신이 놀이기구에 이미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 삶의 오르내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고통받을 것이다. 두려움이 가차 없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통제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는 편이 훨씬 나으며 친구의 팔을 꽉 붙잡거나 아니면 옆에 앉은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손을 잡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