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삶을 거부한 한 여성의 생애와
19세기 에도를 충실하게 재현해 낸 걸작!
『에도로 가는 길』은 19세기 일본 작은 마을에 사는 어느 승려의 딸인 ‘쓰네노’가 자신을 옭아매는 고향을 떠나 더 크고 광대한 세계인 에도로 향한 발자국을 추적하는 논픽션이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저자 에이미 스탠리는 쓰네노와 그녀의 가족들이 남긴 잘 보존된 편지들과 19세기 에도에 대한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쓰네노의 삶과 복작이고 소란스럽던 에도를 놀라울 정도로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2020년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2021년에는 퓰리처상 전기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뜨거운 관심을 받은 『에도로 가는 길』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독자들을 단숨에 설국의 에치고국과 복닥거리는 에도 한가운데로 데리고 간다. 촘촘한 사료들로 뒷받침된 풍부하고 세부적인 묘사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던 거대한 도시를 되살려냈다. 이 꼼꼼한 역사학자는 쓰네노의 눈을 통해 19세기 에도 구석구석의 정경과 소음을 재현해 두었다. 에도 시대에 활약한 목판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생계를 위해 그림 공연을 펼치고, 미쓰이 재벌의 전신이 성황리에 영업 중인 에도의 거리가 눈앞에 소환된다. 에이미 스탠리는 또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그녀에게서 도쿠가와 막부와 쇼군이 통치하던 사회 모습과 200년 가까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태평의 시대에 허리춤의 칼 한 번 뽑아보지 못한 사무라이의 생활고를 전해 듣는 흥미진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덴포 대기근이나 덴포 개혁과 같이 당대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한 큰 사건들과 더불어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소동들 사이로 ‘쓰네노’라는 용감한 길잡이가 독자들을 안내한다.
‘말 안 듣는 딸’ 혹은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쓰네노라는 특별한 보통 사람
1804년, 에치고국 산기슭에 위치한 이시가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승려 에몬의 집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는 아이에게 ‘쓰네노(常野)’라는 흔치 않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에몬가는 한때 사무라이 가문이었으나 16세기 말 들어 쇼군이나 다이묘에게 녹봉을 받는 대신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무사의 신분을 포기하고 평민이 되기를 선택했다. 세월이 흘러 에몬의 조상 중 한 명이 정토진종의 승려로 임명되어 린센지라는 작은 절을 세웠고, 가족들은 대대로 신도들을 돌보며 풍족하게 살았다. 쓰네노가 태어난 집은 그런 역사를 가진 집안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자였으며, 흉년이 든 해에도 세금 걱정에 밤잠을 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저자 에이미 스탠리가 구겨지고 빛바랜 곳에서 건져 올린 쓰네노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기록을 아주 많이 남긴 사람이었다. 쓰네노는 집안의 뜻에 따라 결혼 ‘당하고’ 자신의 지위와 역할이 정해지는 당위적인 일들을 거부했다. 열두 살 첫 번째 결혼을 시작으로 세 번의 결혼이 좌절되자 쓰네노는 이러한 생활을 제 손으로 청산하기를 선택한다.
언뜻 보면 쓰네노가 변덕스럽게 행동한 것—반기를 들다가 이내 묵인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결국 모두 똑같은 계산의 일부였다. 어떤 위험은 받아들일 만했고 다른 위험은 그럴 수 없었다. 유일한 목표는 어떤 변화의 희망이 담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인적 드문 작은 마을에서 죽어가는 늙은 남자 밑에 산 채로 묻히는 일이 없는 삶으로.(106쪽)
‘최초’를 행하는 이들은 언제나 쉽게 사람들 눈에 띈다. 어떤 처음은 응원받고 귀감이 되는 반면 어떤 처음은 너무도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오십 평생 쓰네노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수식어는 ‘고집 세고 불만투성이인 경솔한 여자’였다. 에도로 떠난 쓰네노는 고생스럽게 산다. 그러나 가난하고 위험한 불안정한 생활에 때때로 후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결정을 죽는 날까지 철회하지 않는다. 쓰네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에도로 떠나 온 히로스케라는 남자와 네 번째 결혼을 하면서 끝내는 자신의 발목을 묶는다. 그녀는 유명해지지도, 유의미한 공을 세운 사람도 아니었지만 꿈꾸던 에도에서 자기 자신으로서 죽는 날까지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았다. 각지에서 떠나온 사람들의 발자국들로 북적이는 익명의 도시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었다.
역사는 점이 아닌 선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쇼군이 다스리던 19세기 일본은 개항을 요구하는 시대의 목소리에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오래 지속된 평화로 가부키, 게이샤, 판화와 같은 대중문화가 번성하였고, 에도로 몰려든 사람들은 무엇이든 사고팔았다. 목조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 한복판과 집 안의 경계가 모호했다. 세상을 향한 문을 굳게 걸어 잠근 도시에서 사람들은 큰 화재나 기근 정도를 근심했다. 하지만 외부의 위협은 아무리 숨기고 조심한다 해도 소문으로, 어깨너머로 사람들의 눈과 귀로 흘러들었다. 생활을 망가뜨리는 것이 정치적 재앙이었는지, 그저 원래 인생이 그런 법이었는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1853년, 페리 제독의 함대가 에도만에 정박했고 그 소식은 곧바로 에도에 전해졌다. 일본은 1854년에 미국과 가나가와 조약(미일화친조약)을 맺으며 서구와 교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경제대국의 근대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에이미 스탠리는 한 인터뷰에서 “『에도로 가는 길』은 우리의 세계관과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상상력을 배양할 수 있는 중요한 책”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20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쓰네노의 고단한 여정과 들뜬 도시의 불안한 기류에 슬며시 마음을 얹을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살던 잘 보존된 보물창고 같던 에도가 지진과 화재로 바스러지고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세워진 도시 아래서 여전히 박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디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른 모습을 한 ‘쓰네노’와 ‘에도’를 발견하는 것은 삶의 도전과 모호함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한줄기 희망과 격려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