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일과 일터와 일하는 삶을 끈덕지게 보듬는 책이 출간되었다. 여럿이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꿋꿋한 믿음 아래, 함께 모색하고 타개하여 연대와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데 값진 화두가 될 문장들을 엮은 《같이 가면 길이 된다》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고용정책국장으로 일하는 이상헌이 치열한 숙고와 엄격한 응시를 대동한 채 이런저런 지면에 꾸준하고도 찬찬하게 써온 글을 한데 모았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이 나라’의 일하는 삶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저자는 여전히 원형 경기장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얼얼하게 아프면서도 살뜰한 통찰을 건넨다. ‘일하는 삶’과 ‘회복하는 사회’에 관한 섬세히 떨리는 희망의 문장이 우리를 찾는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이 나라’의 일하는 삶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저자는 여전히 원형 경기장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얼얼하게 아프면서도 살뜰한 통찰을 건넨다. ‘일하는 삶’과 ‘회복하는 사회’에 관한 섬세히 떨리는 희망의 문장이 우리를 찾는다.
거친 발톱끼리 손잡는 기적을 기다리며 적어 내린
‘일’과 ‘일터’와 ‘일하는 삶’을 향한 문장들
‘일’과 ‘일터’와 ‘일하는 삶’을 향한 문장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고용정책국장으로 일하는 이상헌이 사람, 노동, 경제학의 풍경을 전한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에 이어 두 번째 편지를 부쳐왔다. 수신인은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인간이 사자를 죽이면 그걸 스포츠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자가 인간을 죽이면 그걸 포악함이라 한다. 범죄와 정의의 차이라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상헌은 말한다. “가끔, 나는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사자’라는 생각을 한다.”
“원형 경기장에서 가망 없는 싸움을 벌이면서도 삶의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자, 생산이라는 거대한 경기에서 피 흘리며 죽어나가는 슬픈 운명에 처한 사자, 살인 같은 죽음에 ‘범죄’를 따질 수 없는 사자, 죽음 판을 벌인 인간에 대항하여 온몸으로 맞서 싸우면 포악하다고 불리는 사자, 인간이 싸우라고 만든 경기장에서 그에 따라 치열하게 싸우면 형벌을 받는 사자. 죽음, 박봉, 과로, 해고는 경제성장이라는 거대한 게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법칙이고, 거친 바닥에 무뎌진 발톱을 내보이면 당장 포악함의 죄를 물어 갇히거나 칼을 받게 된다. 더러 있지 않았나. 기업이 노동을 죽이는 것은 불가피함이고, 노동이 기업에 죽을 듯 달려드는 것은 곧 범죄다.”(14쪽)
여기, 일과 일터와 일하는 삶을 끈덕지게 보듬는 책이 출간되었다. 여럿이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꿋꿋한 믿음 아래, 함께 모색하고 타개하여 연대와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데 값진 화두가 될 문장들을 엮은 《같이 가면 길이 된다》다. 이상헌은 여전히 원형 경기장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얼얼하게 아프면서도 살뜰한 통찰을 건넨다. 그는 ‘사자’가 무리를 지어 경기장을 무너뜨리고 나오길 꿈꾼다. 거친 발톱끼리 손잡는 기적을 기다린다. 공감과 연대의 힘도 믿는다. ‘인간’과의 연대도 기대한다. 이 모든 꿈을 머리 맞대고 꾸길 소망한다.
속도는 더디고 방향은 제각각인 세상에서
“우리 정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나”
“우리 정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나”
이상헌이 25년째 몸담고 있는 ILO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로서 노동문제를 전담한다. 그는 고용정책국장으로 일하며 세계 곳곳을 대상으로 영어와 불어로 일하지만, 떠나온 ‘내 나라’에 관한 관심은 줄어들기는커녕 나날이 더 커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타국 생활에 따르는 일반적 ‘갈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헌에게는 조금 다른 연유가 있다. 내 나라의 일터 현실이 너무나 더디게 변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이 큰 탓이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가 일터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와 책임을 느끼고, 그 이면에는 불평등 그리고 나아가 ‘나쁜 경제학’이 있다고 말한다. 이상헌에게는 수많은 제약이 있다. ‘외교적 중립성’이라는 단어는 감시카메라처럼 그의 눈과 손을 내려다본다. 따지거나 비판해야 할 대상에 선뜻 칼날을 세울 수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그는 치열한 숙고와 엄격한 응시를 대동한 채 이런저런 지면에 꾸준하고도 찬찬하게 글을 써왔다. 부끄러운 우리가 따지고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우리 정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나.”
일하다가 죽지 않기를,
어떻게든 같이 온몸으로 저어가기를
어떻게든 같이 온몸으로 저어가기를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이 나라’의 일하는 삶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1부 ‘우리 시대 식인의 풍습: 일터의 죽음’에서는 풍족한 살림, 부유한 경제, 만개하는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가운데서도 좀체 지워지지 않는 이 시대의 붉은 그림자를 말한다. 이상헌은 일터의 죽음을 두고, 사회의 집단적 ‘음모’이자 집단적 ‘테러’라고 힘주어 정의한다. 짧게는 지금 이 순간, 길게는 수십 년 거슬러 올라가 일터에서 죽고 다치는 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때로는 묵인과 때로는 소란과 때로는 변화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2부 ‘100년의 거친 꿈: 당당한 노동’에서는 살아남은 노동이 끊임없이 고개 숙이는 현장을 끄집어낸다. 100년 전 8시간 노동, 최저임금, 차별 없는 노동을 내세우면서 ILO가 만들어졌다. ‘당당한 노동’은 누군가에게는 현실로, 그러나 수많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다. 정부가 아예 장시간 노동을 장려하는 법까지 만들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여기 적힌 오랜 역사의 문장들은 한결 서글프면서도 절박하게 다가온다. 3부 ‘울타리 치기와 불평등: 사람, 경제 그리고 권력’은 온 천지가 ‘울타리’인 오늘날을 돌아보며, 바야흐로 불평등은 확대되고 일자리는 불안정한 시대에서 ‘성공’과 ‘능력’과 ‘효율성’으로 세상을 분절화하고 계층화하는 장면을 포착한다. 4부 ‘불평등의 상처: 코비드 시대의 풍경’에서는 바이러스가 한층 가혹하게 경제와 삶을 지배한 곳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에서도 위험과 차별을 짊어졌던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덮치자 더욱 극심한 역할을 떠안아야 했다. 요 몇 년 사이 더욱 살벌해진 ‘어떤 하루’를 좇는다. 5부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 경제학의 그늘’은 경제학자로서 느끼는 책임과 비애 그리고 ‘뱃고동’에 비유한 희망을 담담히 적어 내렸다. 2007년 말 세계 금융위기를 회상하며 지금의 위기에서 헤어나올 길을 찾는다. 마지막 6부 ‘이제 너에게 묻는다’에서는 이 모든 고찰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스스로에게로 물음표를 건넨다. 앞선 장들보다 자비 없는, 그러나 섬세하게 떨리는 물음들이 끝내는 책장을 넘기는 독자에게로 향할 때 제목 여덟 글자가 다시금 선명해지는 순간을 맞는다.
다시, 우리의 ‘일하는 삶’과
‘회복하는 사회’에 관해 말하다
‘회복하는 사회’에 관해 말하다
책은 ‘회복의 희망’을 말하며 끝맺는다. 얼마 전 타계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인간은 회복하는 존재”에서 뻗어 나온 이야기다.
“물건 만들다 죽고, 만든 물건 배달하다가 죽고, 심지어 자다가 추워서 얼어 죽기도 합니다. 그 뜻마저 모호해진 ‘진보’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잔디 자르듯 싹둑 잘라낸 세상은 당분간 화려한 꿈으로 남겨둡니다. 상처 하나 넘으면 다음 상처가 오겠지요. 하지만 한 상처가 오면 세상이 기민하게 회복의 힘을 모아주길 바랄 뿐입니다.”(303쪽)
소설가 김훈은 “이상헌은 학문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 찡겨 있다. 이 부자유한 자리에서 그가 인간의 현실 쪽으로 시야를 열어갈 때 그의 글은 가장 좋은 페이지를 이룬다”고 했다. 경제학자이지만 이론과 숫자로 무장한 학문으로 인간의 현실을 끌고 들어가지도 않고, 힘세고 가지런한 논리를 들이대며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설명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자”라는 시인 송경동의 표현으로 이어진다.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뻔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온기 모아서 회복”하며, “어떻게든 살아내는” 여정을 정겨이 반기고 뜨겁게 북돋는다. 희망, 같이 가면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