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버르적댈수록 깊게 빠지는 늪에 모두 함께 엉켜 있는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책이 출간되었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에 주목하고,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에 사로잡힌 호남을 소환한 저자가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한국 사회의 발걸음에 제동을 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을 요모조모 살핀다. 왜 우리의 정치는 헛돌고만 있을까?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오히려 퇴보하다시피 하는 걸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상황에 봉착할까?
책은 여러 물음을 던지며, ‘교착 상태’에 빠진 한국 사회와 마주하고 이 악순환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분석한다. 결국은 정치의 복원이다. 환멸과 비관과 분노와 피로와 회의 속에서도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위한 정치의 복원을 모색한다.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만성적 위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해부하고 매섭게 파헤치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다.
선진국 진입의 팡파르 너머에서
아무도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다
아무도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다
선진국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좌건 우건 별다른 이견 없이 도달한 보기 드문 합의다. “머지않아 고도 산업사회를 실현하고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참여하게 될 내일의 조국의 모습”을 그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상은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며, 선도국가가 되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언으로 완성됐다. 그러나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환호 아래에서는 정치가 헛돌고 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정치(인)”의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리 공들이지 않아도 쉬이 떠올리고야 마는 심상이다. 그렇기에 선진국 한국의 다음 경로는 지금 당장 심상치 않다.
여기, 버르적댈수록 깊게 빠지는 늪에 모두 함께 엉켜 있는 이 땅을 돌아보는 책이 출간되었다.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만성적 위기에 접어든 한국 사회를 투명하게 해부하고 매섭게 파헤치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에 주목하고,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에 사로잡힌 호남을 소환한 저자가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발걸음에 제동을 건다. 왜 우리의 정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오히려 퇴보하다시피 하는 걸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상황에 봉착할까? 우리는 어떤 선진국을 향하고 있고, 향해야 하는가? 저자는 여러 물음을 던지며 ‘교착 상태’에 빠진 한국 사회와 마주하고 이 악순환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하나하나 짚어 살핀다. 종내에는 “어떻게 정치를 되살릴 것인가”에 관해 논하며,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절실하면서도 살뜰한 제안을 건넨다.
포퓰리즘 정치의 약속의 땅,
한국과 이탈리아
한국과 이탈리아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바람직한 모델로 꼽아온 것은 미국 또는 스웨덴이었다. 보수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진보는 북유럽 사민주의의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제시된 것은 독일 모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비슷하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산업화를 겪었다. 1960년 전후 ‘경제 기적’이라 불린 고성장을 이뤘고, 1980년대 들어서는 ‘제2차 경제 기적’으로 호시절을 맞았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문제로 지적된 것들, 예컨대 방만한 공공 부문과 만성적 재정 적자, 인위적 경기 부양에 대한 의존, 낮은 생산성, 높은 인건비, 투자 부진,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 등이 바뀌지 않으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1990년대 이후 이탈리아 정치는 개혁에 나설 추진력을 갖지 못했고, 경제가 정체를 면치 못하며 2021년 1인당 GDP(3만 1,288달러)에서 한국(3만 1,497달러)에 추월당했다(19쪽).
저자는 이탈리아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나뉜 강한 이중 구조를 보이는 점에도 주목한다. 이는 그대로 사회복지의 이중 구조를 낳는다. 심지어 유럽에서 출산율과 혼인율이 가장 낮은 사회라는 점 또한 닮았다. 경제 구조에 더해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라는 점이 저출생의 요인으로 꼽힌다. 정치 사정을 살피면, 두 나라 모두 거칠고 진득한 포퓰리즘 정치가 주류에 편입해 있다. 다음 문장의 주어로 한국이건 이탈리아건 둘 중 어느 나라가 와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약속의 땅이 있다.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양쪽에서 강한 이중 구조가 형성되어 있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가부장제가 끈끈히 남아 있으며, 좌우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젊은이, 특히 젊은 여성을 위한 나라가 없다고 불린다.” 한국이 지금 어떤 유형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있다는 답을 내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어 저자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 ‘정치의 위기’라고 선언한다.
‘노무현 질서’로 살피는
한국 정치의 내파 과정
한국 정치의 내파 과정
책은 무거운 진단을 토대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을 요모조모 살핀다. 먼저 저자가 ‘노무현 질서’라고 이름 붙인 개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2002년 대선을 전후해 자리 잡은 정치 질서로, 흔히 ‘체제’로 번역되는 레짐(regime)이나 시스템(system)보다 정당, 정치인, 이데올로기, 지지자 구성, 정치 행위의 명시적·암묵적 규칙 등에 방점이 찍혀 있다(12쪽).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한국의 정치 질서는 새롭게 재구성되었는데, 거대 양당이 선거에서 경쟁하는 ‘정권 교체’를 일반적인 상황으로 간주하는 민주주의가 한국 사회에 정착한 것이 바로 이때다. 저자는 노무현 질서의 특징 중 하나로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대중정치의 본격화(58쪽)를 꼽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 경선과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이전과 다른 대중 동원 방식을 만들어냈기에 가능했고, 이후로도 당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인이 직접 ‘시민’을 동원하는 기제를 통해 당내 권력을 잡는 규칙을 확립했다고 서술한다. 이 작업의 바탕에는 대학교 졸업·대기업 근무·대도시 거주 화이트칼라 집단이 사회 전반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중산층 행동주의’가 있었다(13쪽). 새로운 정치 질서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경제 환경 또한 2000년대 초중반 재구성됐는데, 대기업 집단이 보여준 기술 기반과 수출 지향 그리고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는 선진 경영기법 등이 그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오늘날의 위기가 정치인 개개인이나 정당 또는 권력 구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정치 질서가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바뀌어 나가면서, 그 성공으로 인해 정치 질서 내부의 모순이 수습 불가능한 지경이 된 것이라고 갈파한다. 일종의 ‘내파(implosion)’가 발생한 셈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란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결과라는 지적(7쪽)은 통렬하면서도 아리다. 지금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받는 것 중 다수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정당 간 경쟁과 현대적 대중 동원 과정에서 출현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특정 정치인이나 분파에 강한 일체감을 가지면서 다른 이들과 공존을 거부하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아주 친숙한 정치의 모습이다.
대중정치의 주역으로 새로이 떠오른 이들은 수출 대기업의 질적 성장에 힘입어 늘어난 중산층 집단으로, 저자가 전작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상위 중산층(upper middle class)’으로 호명한 바 있다. 이들은 1987년 6월 혁명과 2002년 ‘노무현 돌풍’을 이끌었는데, 이후 ‘깨어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중요한 정치적 상수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경제 구조 고도화는 복합적인 불평등을 낳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질적 격차를 만들어내며, 수출 대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상위 중산층과 나머지 ‘뒤처진 사람들’의 격차가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뒤처진 사람들의 불만이 정권 교체 등 대규모 정치 구조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 노무현 질서가 갖는 불안정성의 근원이자 주된 특징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83쪽).
상위 중산층의 정당, 민주당
무능의 아이콘, 윤석열 정부
무능의 아이콘, 윤석열 정부
2000년대 대중정당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 모두 경제적 ‘승자’들이 주도권을 쥔다. 노무현 정부 시기 정당 간 균열이 “먹고사는 문제”와 거리가 먼 정치 개혁, 검찰 등 권력 기구 장악, 언론 등을 놓고 벌어진 데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노무현 질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는 동시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나 ‘아파트 광풍’ 등을 통해 그 과실이 불평등하게 배분된다는 사실 또한 명확해진 까닭이다. 자산과 노동시장에서 확대된 불평등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 즉 선진국 진입에 따른 결과다(99쪽). 따라서 2021년에서 2022년 사이 대규모로 발생한 탈민주당 유권자들의 공통점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라는 데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수식어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상위 중산층의 정당’이 된 민주당에서 더는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데 따름이다. 글로벌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는 서울의 바깥, 즉 경기도 주민과 호남 및 호남 출신 이주민의 이탈을 시작으로 ‘촛불연합’은 붕괴했는데, 이제는 과거와 달리 경제라는 하부구조마저 민주당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보수정당은 5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지만, 거대한 반대 여론에 꾸준히 직면해 있다. 저자는 근본적 이유로 ‘무능력’을 꼽는다. 앞서 살폈듯, 애초에 그들의 재집권은 쟁취해낸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31쪽).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 정책, 인물, 조직 등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기존 정치 질서의 균열을 봉합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역량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총체적 정치 부재가 야기한 ‘희한한 현상’”이라 지적한다(133쪽).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 정서로 급조된 보수정당의 지지 연합이 와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박정희, 반공·반북, 영남으로 요약되는 전통적 보수(안보 보수)가 퇴조한 가운데, 경제 문제에 집중하는 새로운 보수(시장 보수)도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수의 지지 기반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집권 정당은 이들 지지 기반을 위한 정책을 펼치지 않고 있으며, 펼칠 능력도 없다고 역설한다. 인지적 비당파층을 보수 지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혁신이 필요한데, 그럴 노력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고소득자나 자산 보유자를 위주로 한 정책을 내놓고 있기에, 보수 진영을 이끌어가는 집단과 투표장에서 숫자로 힘을 발휘하는 집단 간의 괴리가 심해지는 모습이다.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낼 역량, 요컨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는 정당에게는 출구 없이 단 하나의 경로만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명명한 ‘공동구매형 사회’에서는 그간 얼추 ‘성의 안과 밖’ 구분 없이 공공재를 구매해서 소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뒤처진 사람들’이 정치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지금 우리 앞에 남은 길이라고는, 이미 여러 선진국이 보여주었고 책에서 대표적 예시로 들고 있는 이탈리아가 걸어간 길인 포퓰리즘 정치뿐이다. 이곳에는 ‘순수한 민중’과 ‘부도덕한 적’, 소위 ‘내 편’과 ‘네 편’만 존재한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민주주의일지는 몰라도 개개인의 삶의 문제는 그 어느 것 하나 약속할 수 없는 척박하고 불안정한 토대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위하여,
정치의 복원은 가능할 것인가
정치의 복원은 가능할 것인가
1989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당신은 중산층입니까?”라는 질문에 75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2022년 〈한국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53.7퍼센트가 그리 답했는데, 45.6퍼센트는 “하위층”이라고 답했다. 특히 30대는 55.6퍼센트가 하위층에 속한다 생각했다(269쪽). 대한민국의 오랜 꿈이 “선진국”이었다면, 한국인의 오랜 꿈은 “중산층”이었다. 고도성장 아래에서 정부의 ‘중산층 만들기’ 계획은 대중의 열망과 기꺼이 결합할 수 있었다. 안정된 생활과 삶의 개선이라는 목표지점으로서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선진국으로의 추격’을 위한 연료이자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265쪽). 비록 ‘목표로서의 중산층’을 모두가 달성할 수는 없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까지도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주요 정당의 공통된 목표로 존재했다. 그러나 2023년 한국 사회에서 ‘열망의 대상 또는 도달해야 할 목표로서의 중산층’은 상위 중산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간주된다. 이제 중산층 복원이라는 사회계약의 갱신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는가’의 문제가 보수와 진보 가리지 않고 과제가 된 상황이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한국 사회가 어떤 특징을 가진 선진국이 되고 있는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을 찬찬하고 집요하게 뜯어본다. 주요 선진국과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의 지표에 주목한다. 닮아도 너무 닮은 숫자와 화살표를 참담한 심정으로 추적한다. 2장에서는 노무현 질서를 뼈대로,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 질서를 분석한다. 탄생과 성장과 균열과 좌초의 연대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3장은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압도적 우위가 어떻게 허물어졌는지 파헤치고, 4장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가진 팍팍한 한계를 살핀다. 5장에서는 기존 정치 질서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주요하고 긴급한 ‘고령화’, ‘지방의 몰락’, ‘외국인 이주민 증가’라는 키워드에 주목한다. 6장은 ‘공동구매형 사회’를 통해 전통적인 공공재 공급 방식이 무너지는 양상과 정치적 함의를 다룬다. 7장에서는 포퓰리즘 정치에 관한 본격적인 규정과 검토가 이어진다.
결국 정치의 복원이다. 책은 “한국은 어떠한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는 닫는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모든 지면은 열려는 시도로 가득하다. 낙담하고 주저앉는 대신 ‘진짜 정치’의 복원을 부르짖고, 그 방법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모색한다. 특유의 섬세함으로 숫자 너머를 읽으려 분투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참가해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안을 찾는 과정’이라는 정의는 언뜻 새삼스럽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가 조금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정치의 본질’임에 틀림없다. 정치의 복원을 불러오는 여정을 통과해야만 국민 누구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진짜 자유’ 또한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젖과 꿀이 흐르는 진짜 약속의 땅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