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니, 시간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김상욱
2023-12-20
152
128*188 mm
9791193166383
1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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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책’으로
하나 된 못 말리는 세 친구와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이 만났다


‘시간’은 가깝다. 친숙하다. 명확하다. 삶이자 일상이다. 그런데 물리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진다.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은 시간을 정의하지 않았고(물리학자 김상욱에 따르면, 이는 “정말 탁월한 결정”이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물리학자도 ‘시간이 무엇인가’를 놓고서 답한 적이 없다. 그들에게 시간은 숫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과거-현재-미래는 환상이다. 그들이 바라보기에는 “시간이 흐른다”는 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표현이란다. 독자는 문득 혼란스럽다. 그래서 항변하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아, 대관절 시간이란 무어길래!

여기, 과학과 세상과 그 모든 가능성을 둘러싸고 끝내주게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보이는 책이 출간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간단치가 않다. 그렇기에 이들이 뭉쳤다. 지난 20년간 꾸준히 ‘과학’과 ‘독서’로 교류하며 지식의 대중화에 몰입해 온 천문학자이자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 펭귄 각종과학관장 이정모, 도서 평론가 이권우, 이렇게 삼인방과 이들의 여정에 감응한 물리학자 김상욱이 한데 모여 시간의 요모조모를 논한다. 지구에서 우주까지, 시간에 대한 숱한 오해와 세상을 말하는 다양한 이론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우주의 시간, 인간의 시간, 생명의 시간, 노동의 시간, 문학의 시간 그리고 바로 지금에 집중하는 금싸라기 같은 대화가 숨 가쁘게 오고 간다.

과거-현재-미래는 없다!?
지금은 가짜 노동의 시대!?


여는 글 〈시간의 의미, 환갑의 의미〉에서 김상욱은 말한다. “시간의 본질에 대한 물리학의 답은 ‘모른다’(단호)이다.” 그는 일전에도 개인 SNS에 ‘시간’을 두고 “악마의 주제”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동갑내기 세 친구인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의 ‘공동 환갑’을 기념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대담 주제인 ‘시간’과 자연스레 이어지는바, 김상욱은 “이 이벤트는 본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찬물을 끼얹는다. 그러나 곧이어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주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프로젝트의 불씨를 활활 살리는데, 과연 인류의 영원하고도 오랜 테마인 ‘시간의 본질’을 둘러싼 심도 깊으면서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대담의 서막이 이와 함께 오른다.

책은 1부(과거, 현재, 미래)와 2부(지금)로 나뉜다. 1부에서는 시간에 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과 과학자가 지닌 인식 사이의 간극을 파고든다. 우리는 ‘기억’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착각)하지만 사실상 “변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김상욱의 말(39쪽)과 함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는 말〉,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5억 4,200만 년 전 지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주기율표와 진화〉, 〈모든 곳의 시곗바늘이 일치하기까지〉 등의 소주제가 독자를 향해 달려든다. 2부에서는 무량 광대한 세계에서 우리가 발 딛고 선 순간을 촘촘하게 검토한다. 〈가짜 노동의 시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도 아름답다〉, 〈과학이 인간의 삶으로 들어올 때〉, 〈우리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등의 소주제를 오가며 우리가 지금 답해야 할 고민과 최선의 문제를 돌아본다.

살아온 사람들이
살아갈 사람들에게 건네는
뜨끈한 말과 말


닫는 글 〈시간 여행〉에서 이명현은 말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시간대를 여행하는 시간 여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들 넷은 ‘시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였지만, 한목소리로 말하지는 않는다. 이권우는 이권우의, 이명현은 이명현의, 이정모는 이정모의, 김상욱은 김상욱의 고유한 ‘시간’을 들려준다. 독자는 《살아 보니, 시간》 한 권 안에서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오묘한 체험을 한다. 때로는 숫자, 때로는 기억, 때로는 경험으로 존재하는 시간의 모든 것을 살핀다.

20년 이상 이들이 나누어 온 특별한 우정은 지면 곳곳을 뭉근하게 감싼다. 지난 시간에 열중하는 만큼 앞으로의 시간에도 애정과 염려를 담은 마음을 조심스레 보탠다. 그 덕분에 그간 우리 시대에 부재했던 ‘어른’의 뜨끈하고도 상냥한 오지랖을 건져 올리는 새삼스러운 경험과 마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어요. 살아 보니, 과거에 연연하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일이 없더라고요. 아픔과 상처, 아쉬움과 머뭇거림, 이 모든 걸 잊고서 지금, 오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이권우의 말이다. 시간에 장사 없고, 돌고 돌아 결국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