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들의 국가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없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모든 것을 위해 싸우라
미국 참여 민주주의와 시민정신의 사상적 뿌리, 알린스키
그의 뜨거운 열망이 담긴 시대의 고전!
민주주의 시민혁명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백만이 훌쩍 넘는 시민들이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더 이상 정치에 냉소를 보내지 않고, 권력자의 처단을 명하며 민주주의의 본령을 뜨겁게 불러내고 있다.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은 원래 그랬다. 정의와 평등, 자유에 관한 권리들은 이처럼 시민들이 직접 행동할 때 비약적인 전진을 이룩했다. 상아탑에서의 결론 없는 논쟁과 토론, 행동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의 교묘한 말솜씨로 짜인 성명서들이 아니라, 권력을 기존 질서의 지배자로부터 시민에게로 실제 옮겨내는 행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시민의 권리를 쟁취해낼 수 있었다. 이 시민의 대열 한가운데서 민주주의 본연의 정신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시민들이 스스로 사회 변혁의 주체로 나서도록 돕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알린스키는 그들을 “급진주의자”라고 불렀다.
이 책은 전설적인 지역사회 조직가이자 참여 민주주의의 사상적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알린스키의 첫 책이다. 알린스키의 두 번째 책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 전 세계 시민운동가들의 바이블로서 실질적 활동 교본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 ‘성나고 무모하고 불손한’ 청년 알린스키는 정제되지 않은 뜨거운 언어로 뭇 사람들의 정신에서 뭉근하게 끓고 있는 저항의 결기를 들쑤시고 그들의 마음에 인간 존엄의 회복을 위한 투쟁이라는 불을 지핀다. 그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기존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 모든 ‘신성한’ 것들에 반역하고 투쟁하는 ‘불경한’ 자들을 급진주의자라 명명한다. 그들은 노예제 폐지, 노동운동의 건설, 공교육의 확대, 토지 분배, 독점 자본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섰다. 의회에서, 노동자의 곁에서, 위협적인 경찰에 맞선 피켓 라인에서, 민주주의와 인간에 대한 굳은 신념하에 유연하게 사고를 바꿔가며 전방위로 활약했다.
그러한 급진주의자의 정신은 오늘날 미국 진보 정치를 이끌고 있는 버니 샌더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적 신념에도 직결된다. 이들은 모두 알린스키의 사상적 세례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힐러리의 대학 졸업 논문은 알린스키 모델에 대한 92쪽짜리 분석이었다. 오바마는 대학 졸업 후 알린스키의 사상을 이어받은 시카고 흑인 공동체 운동에 합류했다. 그는 당시를 두고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시절로 회상한다.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샌더스의 ‘정치 혁명’은 알린스키의 이론을 실천에 옮긴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돌풍은 샌더스 자신이 아니라, 알린스키식 조직화로 이루어낸 샌더스 진영의 값진 결과인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나는 불경하다
알린스키가 말하는 급진주의자는 보통의 시민들과 자신을 감정적으로 동일시하며 시민들의 완전한 경제적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위해 격렬하고 비타협적으로 싸운 이들이다. 급진주의자는 인간의 마음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불꽃을 지핀 인간 횃불이었고, 그 때문에 미움을 받고 공포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그들은 급진주의자라는 모멸을 오히려 명예의 증표로 받아들였으며, 자유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했다.
인간애를 발휘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점은 자유주의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역시 자유로운 열린사회를 꿈꾼다. 그러나 알린스키가 보기에 자유주의자들은 머리로만 인간을 사랑할 뿐이고, 장광설로만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무엇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의 권력을 두려워한다. 알린스키는 급진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급진주의자가 지향하는 태도를 부각한다.
“자유주의자는 저항하지만 급진주의자는 반역한다. 자유주의자는 분개하지만, 급진주의자는 격노하고 행동을 개시한다.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바꾸지 않은 채 생활의 작은 부분만을 대의에 바치지만, 급진주의자는 대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놓는다. 자유주의자들은 구두 변론을 주고받지만, 급진주의자들은 고되고 더럽고 쓰라린 생활 방식을 주고받는다.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대법원이나 의회 등 존경받는 상층부로 올라가는 반면, 급진주의자들의 이름은 대리석에 새겨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은 인간의 마음에서 영원히 타오른다. 자유주의자는 부드러운 신념을 지니며 그것은 전투의 더러움, 졸렬함, 고통, 박해, 비통함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급진주의자는 직접 행동의 고된 행보로 무감각해진, 질긴 확신을 가지고 있다. (…) 자유주의자들은 꿈을 꾸고, 급진주의자들은 인류가 꿈꾸는 세계를 건설한다.”(본문에서)
급진주의자는 노조 운동가와도 다르다. 알린스키는 노조 운동이 기본적으로 고용주와 고용인의 단체 협상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노조가 자기 정체성과 안전을 지키려면 필연적으로 현재의 체계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본래 급진주의자가 신봉하는 원칙들의 확고한 옹호자였지만, 강해지고 부유해지고 명성을 얻으면서 이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거래를 서슴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는 꿈을 꾸고, 급진주의자는 인류가 꿈꾸는 세계를 건설한다
이처럼 알린스키는 자유주의자와 노조의 행태에 비판의 날을 세우며, 급진주의자가 나아갈 길은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사회 변혁의 주체로 등장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들이 빈곤, 무지, 타락으로부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은 시민들을 민주적으로 조직화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민조직’이다. 인민조직은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스스로 창설하고 운영해야 하지만, 맨 처음 착수하고 곁에서 돕는 조직가의 일도 매우 중요하다. 알린스키가 해왔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인민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다룬다. 여기에는 조직화, 투쟁, 교육, 심리 분야 등에서의 전술과 책략이 포함된다. 알린스키는 이러한 전술을 실행할 때 지켜야 할 사항들과 맞닥뜨리게 될 문제들에 대해 세세한 지침을 제시한다. 특히 실제로 활동하는 조직가들이 지역사회에서 겪었던 우여곡절과 실패를 딛고 성공에 이른 경험담은 시민운동가들이 현장에서 조직화에 착수할 때 실패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알린스키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막연한 표어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자신과 동료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을 향상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알린스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조직된 시민들과 함께 불의에 맞서는 일은 결코 고상한 지적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어떤 규칙도 없는 전쟁이다. 민주주의의 큰 진전은 성명서나 낭독하면서 도덕적 ‘승리’에 취한 자들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깨부수고 권력을 쟁취한 시민들 덕분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방법을 담았다. 알린스키가 70년 전에 쓴 이 책이 지금 더욱 필요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