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RENDER 서렌더
보노(폴 휴슨)
홍기빈
2024-09-20
852
155*228 mm
9791193166697
43,9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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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그룹 U2의 리더이자 싱어, 메시지 전달자인 보노의 자서전. 아일랜드 더블린 교외의 한 소년에서 세계적인 현상이 되기까지. 대표 40곡과 에피소드로 구성한 40년의 음악과 사회활동에 대한 솔직하고 겸허한 회고록. 그의 분노와 사랑, 신념과 신앙, 가족과 밴드에 대한 고백과 내면의 스토리.

 

1976년 결성(올해로 48년), 12장의 정규 앨범 발표, 전세계 1억 7,000만 장의 음반 판매, 그래미상 22번 수상, 2005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롤링 스톤》지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 중 22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큰 성취를 이룬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인 U2는 아일랜드 음악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전 세계에서 수입이 가장 많은 밴드 중 하나이다. 1987년 발매한 <The Joshua Tree> 앨범은 대중음악 최고의 명반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이 책은 전설이 되어가는 이 록 밴드의 리더이자, 목소리, 메시지 전달자인 보노의 자서전이다.

그가 U2의 목소리인 이유는 보컬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메시지 전달자인 이유는 가사와 음악뿐 아니라 활동가로서 비폭력, 정의,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선정한 대표 40곡(이 책 전체 40장의 제목은 모두 보노가 고른 40곡의 곡명으로 되어 있다. 40장인 이유는 4명의 멤버가 40년을 함께 해온 기록을 담았기 때문)을 중심으로 그들이 어떻게 밴드를 결성했고, 어떻게 10대의 아이콘에서 세계 최대의 밴드가 되었으며, 수십 년간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모든 멤버가 거의 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U2로서 함께할 수 있었는지 말한다.

첫 곡은 어떻게 완성되었고, 그(들)에게 음악의 의미는 무엇이며, U2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모습, 밴드의 해체 위기와 미래에 대한 고민, 청중과 공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왜 사회 참여 메시지를 내고 있고, 어떻게 세계적 차원의 비폭력, 빈곤 및 에이즈 퇴치 운동을 이끌고 참여해 왔는지 등을 회고하고 있다.

 

이제 분장실을 떠나 복도를 걸어간다. 군중들의 함성이 높아진다. 이 함성이 조그만 생쥐 같은 나를 한 마리의 사자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나는 무대로 걸어 나가면서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린다. 노래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는 준비다. 앞으로 이 책에서 나는 노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겠지만, 40년의 경험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노래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 머물 수만 있다면, 내가 노래를 노래하는 게 아니라 노래가 나를 노래하게 되리라는 것. 그리고 공연은 내게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되리라는 것.(22쪽)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소년, 그는 어떻게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어떻게 밴드를 결성하였으며, 매니저, 음반사와는 어떻게 계약을 하게 됐고, 마침내 하나의 세계적인 현상이 될 수 있었을까? 저자 폴 휴슨(보노의 본명)이 11살이었을 때 부모님은 그를 더블린의 세인트 페트릭 성당 문법 학교에 보냈다. 마침 학교에는 뛰어난 소년 합창단이 있었다. 나중에 보노라는 별명을 갖게 된 폴은 어릴 때도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테너 톤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고, 폴은 자신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합창단에 합류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어머니 아이리스는 폴이 대답하기도 전에 대신 뛰어들어 아들은 노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피아노를 팔기로 했을 때, 나는 그 피아노가 우리 집에 아주 잘 맞을 것이라고 엄마에게 온종일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바보 같은 소리 그만. 우리 집에 어디 피아노 들어갈 데가 있다고?” 우리 집에는 피아노 안 된다. 자리가 없다.”

그다음에도 아이리스는 나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볼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내가 11살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도심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성당 문법 학교에 보냈는데, 이 학교는 소년 합창단으로 유명했다. 호너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합창단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아직 11살 소년이었던지라 나 자신도 확신이 없는 재능을 내세울 배짱이 없었다. 아이리스는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감지하자 나 대신 대답했다.

“전혀 아니에요. 폴은 노래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음악과 천생연분으로 맺어진 아들을 둔 어머니치고는 조금 이상한 행동이었고, 막내아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43쪽)

 

이 책은 이런 재미있고도 감동적이며 환희와 가슴 아픈 순간들로 가득하다. 동시에 독자들은 이 책에서 U2의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40곡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의미, 탄생의 배경을 읽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이 자서전에서 보노는 자신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개방한다. 독자는 아티스트이자 활동가이자 현실주의자이자인 그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고 겸손한 회고를 통해, 그의 음악에 대한 생각부터 사회 참여 활동, 이상부터 현실,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아프리카의 병원까지의 광대한 여정에 동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가 U2의 첫 리허설 주에 첫 데이트를 신청한 아내에게 쓴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책에서 아내 앨리(본명: 앨리슨 스튜어트)는 보노에게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고 언제 항복해야 하는지, 해답보다 질문이 더 많은 이 인생 드라마의 모든 장면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자 이정표와 같은 존재로 그려져 있다.

 

앨리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나를 정말로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된다. 당시의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긴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앨리는 내가 어머니 아이리스의 죽음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분노,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나를 집어삼킬 듯이 이글거리는 이 분노의 뿌리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다.(50쪽)

 

 

서렌더(surrender), 항복! 투지 넘치는 예술가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어떻게 ‘항복’하는지 배울 때.

내면의 성장을 향한 노보의 성찰과 현실 세계에 대한 탐험 이야기, 그가 무대와 만남을 통해 배운 것들에 대하여

 

가톨릭교도 아버지와 개신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보노는 아일랜드에서 분쟁이 극심하던 시기에 더블린 북쪽 지역에서 자랐다. 열네 살 때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경험은 그의 내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40년 활동의 어느 한 면은, 그가 어린 날 잃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상실과 결핍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심리학 전문가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가장 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전까지 그 트라우마와 맞부닥쳤던 순간에 우리의 한 부분이 계속 멈추어 있다. 그래서 나의 세상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또 사춘기에 들어섰던 14세에 오랫동안 멈추어 있었다.(74쪽)

 

그는 평범한 삶을 살기 시작했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삶 전체는 누구나 평범하다는 가정에 맞서 싸우는 것이기도 했다. 누구나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래와 사회 참여로 투쟁하였다. 무질서할 만큼 폭발적이고 다발적이었던 그의 창의성은 스튜디오에서, 무대에서, 시위 현장에서, 백악관과 의회 복도에서, 또는 구석진 바에서조차 꺼질 줄 몰랐다.

우리는 보노가 가지고 있는 어떤 분노를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는 스스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185쪽, 500쪽). 그 분노는 그의 비폭력 운동, 음악과 앨범, 공연에 색을 입힐 뿐만 아니라, 그의 자존감보다 훨씬 더 큰 내면의 변화와 깨달음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성장과 배움의 이야기가 책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내가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남들의 행동보다는 나 스스로의 행동에서 뭔가를 발견하려는 쪽으로 더 노력한다는 점이다. 내가 서서히 이해하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가 맞서 싸우려고 하는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추구하는 바의 반대 생각에 익숙해지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싸움은 그다음에 벌여도 늦지 않다.

악마가 익숙해질 정도로 파악해라. 링 안으로 들어갈 때 가장 준비가 잘된 격투가는 적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그 적이 당신 자신일 때는 더욱 그렇다.(264쪽)

 

싸움은 세상과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벌어지는 것일 때가 아주 많다.

일생에 걸쳐서 나는 이러한 여러 모습의 현현(顯現)을 경험하였지만, 내가 이번 삶의 새로운 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나타난 현현은 그다지 평안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나에게 나 자신을 정복하라는 도전을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나를 넘어서서, 나를 새롭게 만들라는 것이다.(731쪽/732쪽)

 

“U2는 누구에게든 벌어질 수 있습니다”는 1978년 밴드가 처음 만들었던 배지에 써넣은 문구였다. 보노는 원하는 대로 될 거라 믿었고, 또 실제로도 실현되었다. 그는 “노래하는 법을 알게 되기 한참 전부터 싱어로 행세하고 다녔다. 악기 하나를 제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되기도 전에 작곡가로 행세하고 다녔다.” 공연 중에 실제로 무대에서 뛰어내리면 누군가가 받아줄 거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해낼 수 있다는 엄청난 크기의 믿음”으로 살았다. 결과를 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10대 시절부터의 강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보노는 이제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렇게 내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결사적인 욕망에 큰 위험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서히, 그리고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놓아버리는 법을” 배워가고 있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놓게 되면 바로 그 순간 나의 정신적인 잠재력은 내가 가진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729쪽)라고 고백한다.

보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 <SURRENDER(서렌더, 항복)>인 이유다.

 

나는 정말로 승리를 거두는 유일의 진리는 바로 항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로에게. 사랑에게. 더 상위의 권능에게.(721쪽)

 

항복을 통한 평화. 항복이란 많은 위대한 신앙들에 있어서 핵심을 차지하는 사상이다. 예수는 로마 병사들이 그를 잡으러 왔던 밤 이렇게 기도했다. “저의 뜻이 아닌 당신의 뜻대로.”(723쪽)

 

항복의 순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놓기로 결정하는 순간이다. 내가 내 삶을 통제하지 않으므로, 모종의 ‘더 높은 권능’에 온전히 나를 맡길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다.(726쪽)

 

보노에게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과 도전은 그의 신앙만큼 계속 이어지는 주제다. 그는 소음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발견하듯 결혼 생활, 음악 활동, 불평등 및 극심한 빈곤과의 싸움에 숨겨져 있는 ‘작은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대변하고, 작사와 음악, 공연, 사회활동을 통해 그 메시지를 표현하고 구현하기 위해 실천해 왔다. 이 책에서는 그 40년의 여정과 다양한 인물들의 스토리가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전한다.

 

나는 이제 싱어와 노래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져 주기를 소망한다. 싱어가 노래 자체가 되어 버리는 이 이미지는 내가 자라면서 멀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자라면서 간절히 희망했던 것이었다. 나는 오롯이 이것만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736쪽)

 

나는 배워야 한다

집에 있는 법을

고요하게 멈추어 있는 법을

그리고 항복하는 법을

그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742쪽)

 

 

“명성이라는 화폐”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보노가 만난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부터 빌 게이츠까지, 클린턴, 오바마부터 조지 W. 부시, 고르바초프까지, 폴 매카트니, 밥 딜런, 프린스부터 파바로티까지, 그리고 만델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투투 대주교, 오프라 윈프리와의 일화. 보노가 이들과 만나 만들어간 것들. 그리고 동시대 세계적인 명사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그들로부터 배운 것들

 

1982년 이후 U2 멤버들은 자신들 밖의 세상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히트곡을 만드는 것보다 더 절박한 필요가 가득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노래에서 찾았다. 1983년에는 ‘Sunday Bloody Sunday’를 통해 아일랜드의 분파주의자들을 향해 노래했고, 4년 후에는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으로 아프리카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말했다. 1984년에는 ‘Pride (In the Name of Love)’로 미국에서의 인권과 인종 문제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뒤로 30여 년 동안 보노는 시간제 활동가에서 빈곤국의 부채를 탕감하고, 특히 미국 정부가 글로벌 에이즈 비상사태에 대응하도록 설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로 진화한다. 보노는 대통령 에이즈 구호 긴급 계획 PEPFAR의 탄생 현장에도 있었다. 당시 단일 질병과의 싸움으로서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그는 자신이 공동 창립한 NGO ONE의 활동가들을 “팩티비스트(Factivist)”라고, 자매 조직 (RED)를 “행동주의로 가는 빨간약”이라고 부른다.

보노는 자신이 보다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의 “명성이라는 화폐”를 활용한다. 또한 “자신을 일종의 세일즈맨이라고 여겼다. 노래들을 팔고, 아이디어들을 팔고, 밴드를 팔고, 그리고 희망을 팔고.”(485쪽)

 

나의 명성을 활용하여 줄 서 있는 레스토랑에서 먼저 자리를 안내받는 것보다(물론 이것도 대단한 일이다) 좀 더 유용한 곳에 쓰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명성은 화폐 같은 거야.” 나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가진 이 화폐를 제대로 된 데에다 쓰고 싶어.”(482~483쪽)

 

그는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에 이르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콘돌리자 라이스 등의 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넬슨 만델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투투 대주교, 고르바초프 등의 세계적인 지도자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과 같은 비즈니스 리더들, 그리고 밥 딜런, 폴 매카트니 등의 전설적인 음악인들과 오프라 윈프리 같은 미디어 스타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절대적 약자들이 처한 빈곤과 질병 문제의 해결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우정을 나누었다(보노는 실제로 유엔 사무총장이나 국가 원수와도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공연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보노는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독자들은 등장하는 다양한 명사들과의 흥미롭고 다이내믹한 에피소드는 물론 그들의 사적이고 생생한 일거수일투족까지 함께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그들에게 보노가 배운 교훈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오프라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프리카의 AIDS가 그녀의 1천만 시청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중 다수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평범한 주부들인데?

맞습니다…. 오프라, …제가 볼 때 이 문제는 우리가 한 아이의 생명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음악 팬들이라면 이런 논리는 상당히 설명을 해야 하는 이야기이며,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세상에는 바로 여기에 설명이 필요 없는 한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어떤 어머니라도,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의 생명도 자기 아이와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 못 할 사람은 없어요. 설명 안 하셔도 돼요.”

전율이 지나갔다. 스튜디오 청중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러한 뜨거운 호응에 놀랐다. 이는 아주 특별한 종류의 소리,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소리였다. 누군가 내게 말해준 대로, 오프라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곧 미국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찍어놓은 여러 점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 주었다.(563~564쪽)

 

처음 해리 벨라폰테에게 찾아갈 때는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 나도 뚜렷이 인식하지 못했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공통 기반을 찾는 일은 더 높은 지평을 찾는 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심지어 적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적과의 관계라면 특히 더 그러하다. 이는 내게 하나의 깨달음의 순간이었으며, 그때 이후로 내 삶의 지혜가 된 확신이기도 했다. 만약 하나라도 중요한 점에 동의할 수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해 동의할 필요는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아이디어.(527~528쪽)

 

“여러분들은 오늘 밤 청중들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려 하시나요?” 그(워런 버핏)가 물었다.

“좌석마다 엽서를 다 붙여 두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들 지역구의 지도자들 및 상원의원들에게 그 엽서를 보내도록 할 겁니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인데요.” 그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너무 쉬운 일을 부탁하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좀 더 어려운 일을 해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겁니다.”

(...) “미국의 양심에 호소하지 마세요. 미국의 위대함에 호소하세요. 그렇게 해야 일이 잘 성사될 거예요.”

나는 여기에서 미국 시민들에 대해 또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너무나 통찰력 넘치는 심리적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 유럽인들 특히 아일랜드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죄의식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의로운 기사도 정신을 호소하면 이들은 바로 당신 편이 된다.(567~568쪽)

 

훗날 스티브 잡스는 나와 바비 슈라이버에게 (RED)의 창설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다. (...) 커뮤니케이션에서나 디자인에서나 큰 스승이었던 스티브는 항상 본질만 남기고 나머지를 버리는 증류(distillation)를 추구하였다. 최소한의 클릭, 끼어드는 것들의 최소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의 최단 경로. 항상 간명함을 유지할 것, 이것이 변함없는 그의 가르침이었다.

“이걸 계속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있어요. 알약이 없으면 사람들이 죽는다. 알약이 있으면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이걸 하나의 주문처럼 사용하세요. 사람들에게 팍 꽂히는 주문으로요.”

스티브는 나중에 바비와 만나 우리가 제안한 몇 개의 광고들을 보고 토론을 가졌다. 과연 그답게… 단도직입적이었다.(583쪽)

 

 

보노의 음악에 대한 생각과 열망, 청중과 팬들에 대한 믿음, 밴드 멤버에 대한 존중과 사랑, 그리고 자신과 밴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밴드 동료들에 대한 보노의 충성심뿐만 아니라 보노에 대한 동료들의 애정 또한 놀랍다. 이 책에는 이 같은 사실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 그려져 있다. 애리조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U2가 당시 주지사에게 마틴 루터 킹 데이 공휴일을 지키라고 촉구했을 때의 일이다. U2 보안팀은 밴드가 마틴 루터 킹을 위한 헌정곡 ‘Pride (In the Name of Love)’를 연주하면 보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던 상황.

 

공연장에서는 모든 무기와 폭발물을 샅샅이 수색했고, 우리는 예정대로 공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Pride (In the Name of Love)’를 힘차고 당당하게 연주하기 시작했지만, 3절에 가자 나는 주눅이 들기 시작했거나 적어도 집중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거의 반쯤 무릎을 꿇었다. 이건 그냥 멜로 드라마가 아니었다. 나머지 가사를 다 부르기가 너무 겁이 났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것이었다. (...)

나는 불안에 빠진 나머지 이게 구세주 콤플렉스라는 점을 간과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청중이 보이지 않았다. 애덤 클레이턴이 내 바로 앞에 서서 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3절이 끝날 때까지 내 앞에 서 있었다.(501쪽)

 

U2는 얼터너티브 록, 디스코, 팝, 컨트리를 넘나드는 폭넓고 다양한 음악성과, 피의 일요일 사건, 독일 통일, 인종차별 문제 등을 다룬 다양한 사회 참여적인 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은 앨범마다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는데, 그 속에서도 U2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고, 실험적인 밴드와 대중적인 밴드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이 책에서 보노는 40년 동안 매 앨범 새롭게 최고의 것을 담고자 했던 고심과 도전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멤버들과의 갈등과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데이비드 보위 같은 솔로 아티스트는 여러 다른 음악인들을 사용하여 다른 사운드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밴드는? 똑같은 네 사람으로 이루어진 밴드가 계속 청중들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다양성을 창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그런 일을 20년 넘게 계속할 수 있을까?

게다가 40세가 넘어서도 그럴 수 있을까?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갈 건가 아니면 거기에서 이탈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건가? 이 질문에 대해서 1980년대에는 〈The Unforgettable Fire〉와 〈The Joshua Tree〉 앨범이 그리고 1990년대에는 〈Achtung Baby〉와 〈Zooropa〉 앨범이 답을 제시했다. 하지만 새천년이 다가오면서 이 질문은 새로운 난문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리듬 지향성을 가진 음악이 점점 더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록 음악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에는 0과 1의 이진법 디지털 세계가 될 것이며, 랩 음악이 크게 발흥하고 힙합이 지배하게 될 것이며...(433쪽)

 

엄청난 양의 앨범 판매고를 올려봐야 그건 인기가 좋다는 것 말고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만약 위대함을 성취하는 게 목표라면 노래들이 팝 차트에 올라간다는 것 말고 다른 척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 귀에는 아직 U2가 음반으로 만들지 못한 노래들만 들렸다. 내 눈에는 아직 우리가 무대에 올리지 못한 공연들만 보였다. 나는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우리는 다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는 계속 움직여야 하며, 계속 함께해야 하며, 계속 겸손함을 유지해야 했다. 우리 밴드를 계속 해체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결성해야만 했다.

모든 창조의 순환 주기는 탄생, 죽음, 부활이다. 우리 밴드 또한 그러한 순환 주기를 따라야만 한다. 밴드를 결성하고, 밴드를 해체하고, 밴드를 다시 결성하고. 발생, 퇴락, 갱생.(396~397쪽)

 

40년 넘게 활동한 4명의 멤버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서로를 비판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떨 때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바닥나 버릴 때도” 있었다. “이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었고, “우정의 우물이 말라버리는 일은 가족에서도, 부부 관계에서도, 공동체에서도, 또 밴드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710쪽)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멤버들이 있었기에 보노 자신이 있을 수 있었음을, 오로지 협업을 통해 두 배로 네 배로 그 결과를 키워서 성공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멤버들 사이의 이 같은 어려움과 그 극복의 과정에서 탄생한 곡이 ‘One’이다).

 

우리는 하나이지만 똑같지는 않다. 우리는 서로를 끌고 함께 간다.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 모두 똑같다고 억지로 가식을 부릴 필요는 없으며, 서로를 끌고 가야 할 의무도 없다. 하지만 진실을 보자면, 좋든 싫든 우리는 반드시 모두 서로를 끌고 함께 가게 되어 있다.

(...) 위대한 동지애야말로 진정한 밴드의 핵심이다. 그러한 동지애가 떠나버리면 보통 뮤즈 또한 그와 함께 멀리 떠나버린다. 나라는 사람은 특히 친구들에 대한 갈망이 지나칠 정도로 큰 사람이며, 특히 협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도 하지만, 내가 배운 것을 협업 관계로 가져가서 두 배로 아니 네 배로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짜 내 성향이다. 우리 밴드가 없다면 나는 내 머릿속의 음악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없다. 나는 오로지 협업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363~364쪽)

 

엣지, 애덤, 래리가 없다면 나는 예술가 한 사람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국 이해하게 되었다. ...엑시트 사인이 스탠드에서 번쩍인다. 나는 무대 위의 내 동료들을 돌아보며 내 마음속에 감사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하나이며, 아주 짧은 순간 우리는 똑같아진다.(365쪽)

 

비폭력과 평화의 메시지 또한 U2 음악의 특징이다. ‘One’처럼 아름다운 내용을 담은 곡도 있고, ‘Sunday Bloody Sunday’와 같이 사회적 아픔을 토로하는 곡도 있다. 특히 가사에서 록 밴드들 가운데 손에 꼽을 정도로 곡들마다 내용적 의미가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노의 음악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간명하다. 그는 자신과 음악의 관계, 음악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팝 음악은 그저 3분 동안 순수한 즐거움, 예상치 못했던 달콤한 멜로디, 캡슐에(단맛이나 신맛의 껍질에) 담은 진실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 말고 그 어떤 의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음악은 내가 혼란을 겪고 있을 때 항상 빠져나오게 해줄 수 있는 생명줄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음악의 정당화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의 영혼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주는 성스러운 임무는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누군가가 그저 아침에 깨어났을 때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은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는 사랑이다. 음악은 그 자체로 존재 이유다.(280~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