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는 어떤 기업인가
국가 역량을 모은 타이완 최고의 무기
TSMC는 어떤 기업일까. 반도체 파운드리, 타이완을 대표하는 기업, 세계 1위가 이 기업을 수식한다. 반도체 매출이라면 삼성도 세계 최고를 다투지 않느냐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TSMC는 세분화된 반도체 산업 중 메모리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삼성, SK하이닉스와는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를 주문받아 생산하는 데 특화된 기업이다.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기업을 ‘파운드리’라고 한다. TSMC는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이 설계한 최신, 최첨단의 반도체 칩을 생산하며 글로벌 1위 파운드리로 성장했다. 빅테크와 칩을 설계하는 세계적 기업들이 높은 수율을 자랑하는 TSMC에 제조를 의뢰하려 앞다투어 줄을 서 있다.
TSMC는 최근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54% 상승하여 14조 원을 기록했다. 엄청난 실적으로 어닝서프라이즈를 맞았으며,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2024년 2분기 매출액 기준 62퍼센트로 압도적 1위다. 삼성전자가 2위로 11퍼센트를 기록했는데 3분기에는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 부문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 우리가 반도체 전쟁에서 최후에 웃기 위해서는 TSMC를 파헤쳐 그 성공 비결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TSMC의 정식 명칭은 타이완반도체제조회사台灣積體電路製造公司,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다. 현지에서는 ‘타이지뎬台積電’이라 불리며 이공계 종사자를 넘어 모든 사람들의 꿈의 직장이다. 타이완의 자부심이기도 한 TSMC는 초기 자본금 가운데 48퍼센트를 정부가 투자하고, 27퍼센트는 필립스가 출자했다. 추후 필립스는 주식을 전량 매각했고 현재 타이완 정부의 지분은 6퍼센트이다. 이제 TSMC는 외국인이 지분의 70퍼센트 이상을 보유한 민간 기업이다.
《TSMC, 세계 1위의 비밀》에는 37주년을 맞은 TSMC의 설립부터 발전, 위기와 극복의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굴지의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부사장을 지낸 모리스 창이 고국으로 돌아와 TSMC를 설립한 과정, 삼성과의 인연과 경쟁 구도, 타이완 내 최대 경쟁사였던 UMC와 벌인 치열한 기술의 경주, TSMC 최고 엔지니어 량멍쑹의 삼성 및 중국 반도체 기업 이직, SMIC(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와의 기술특허침해 소송 등 TSMC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고군분투한 과정이 담겨 눈길을 사로잡는다.
추천사를 쓴 반도체 전문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권석준 교수는 책을 읽고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매일같이 나오고,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미디어의 지면을 장식하는 이 시점, 한국의 앞으로의 경제 발전 전략은 물론,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 방안에 귀중한 힌트를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저자 린훙원林宏文은 타이완 최고의 경제저널 〈비즈니스 투데이Business Today, 今周刊〉의 부편집장을 지낸 후 고문으로 활동하는 하이테크 및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다. 언론계에 발을 내디딘 첫해에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 전 회장을 인터뷰했으며, TSMC의 역사적인 자료인 ‘R&D 6기사’ 사진이 촬영될 당시 취재 기자로도 알려져 있다. 수십 년간 TSMC를 움직이는 유력 인사들을 가까이서 취재해 온 TSMC 전문가다.
2023년 타이완에서 출간된 《TSMC, 세계 1위의 비밀》은 일본에서 2024년 3월 《TSMC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TSMC 世界を動かすヒミ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TSMC의 성공전략
제조업을 서비스업처럼. 그리고 목숨을 건 R&D
TSMC는 반도체 제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과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업계를 선도해 왔다. TSMC의 설립부터 30여 년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린훙원은 TSMC의 설립과 초기 도전 과제, 경영 전략과 인재 영입 방법, 기업문화와 엔지니어 위주의 조직 구성, 주요 기술 발전 과정과 글로벌 파트너십, 그리고 미·중 반도체 전쟁 및 지정학적 긴장 국면에서의 파훼법을 책 속에 담아냈다.
1부: 배치와 전략 – TSMC의 설립 배경과 타이완 내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전쟁을 다룬다.
2부: 경영과 관리 – 설립자 모리스 창의 인재 확보, 기술 혁신에 과감히 투자하려는 의지를 다룬다.
3부: 문화와 DNA – 종업원주식배당제도, 장비의 짧은 내용 연한, 겸손의 미덕과 엔지니어들의 헌신을 다룬다.
4부: R&D와 기술 – TSMC의 선진 기술 발전 과정과 R&D 투자 열정을 다룬다
5부: 지정학적 환경 – 미국의 중국 제재와 일본 반도체 산업 실패, TSMC의 파운드리 해외 공장 설립을 다룬다.
TSMC는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으로서 고객 맞춤을 오롯이 지향해 왔다. 삼성전자가 자체 브랜드파워로 인해 파운드리 발전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대조적이다. 반도체 칩을 설계해 제조를 맡기는 고객사들은 경쟁업체인 삼성에게 의뢰하기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TSMC는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여 수율 향상과 미세 공정 발전을 위해 R&D에 매진해 왔다. IBM을 꺾은 2000년의 130나노 구리 공정 개발 때는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으로 1년 반 동안 가족을 떠나 연구개발에 몰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삼성과 인텔의 추격을 뿌리친 2016년의 10나노 공정 개발 때는 R&D 인력 400여 명에게 ‘기본급 30퍼센트 추가 지급, 성과급 50퍼센트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24시간 3교대로 쉬지 않고 일하게 했다. 그 결과 애플의 A10 프로세서 칩을 전량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TSMC의 기술 발전사와, 미국 공장으로 파견한 인력을 복귀시키고 파운드리 투자에서 한 발 물러선 삼성전자의 현실을 비교할 때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미·중 무역 전쟁과 AI 시대에 반도체 기업이 가야할 길은 목숨을 건 R&D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미·중 반도체 전쟁에 이은 트럼프 2기
TSMC와 타이완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됨으로써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목전에 있다. 총격에서 살아남고 연임에 대한 걱정도 없는 트럼프는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타이완은 미국에 보험료를 내듯 안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그의 한마디에 TSMC 주가가 2%나 떨어지고 반도체주 전체가 휘청이기도 했다. 미국만을 위한 보호무역주의, 대표적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으로 드러나는 미국 우선주의는 세계 각국의 분업이 정착된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타이완의 TSMC는 미국의 현지 생산 압력과 보조금 수령을 위해 텍사스와 애리조나에 각각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타국 기업을 향한 보조금에 부정적인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 진출 성과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촉발된 미·중 반도체 전쟁은 트럼프 2기에서 더욱 격화할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저자 린훙원은 마지막 5부에서 ‘지정학적 환경’을 다룬다. 먼저 일본과의 협력으로 위기를 돌파하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일본이 비록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급락했지만, 반도체 장비, 실리콘 웨이퍼, 화학, 소재 등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TSMC는 소니의 이미지 센서가 있어야만 애플에 납품할 칩을 만들 수 있음을 든다. TSMC는 일본 규슈에 소니, 덴소와의 합자회사인 JASM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것은 타이완-일본 동맹으로 미국에 대항하려는 시도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일본이라는 우수 고객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제조업을 서비스업처럼 수행하여 성공한 TSMC의 전략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게다가 TSMC 애리조나 공장이 원활한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 중 하나로 타이완 현지와는 다른 근로문화, 즉 초과근무에 대한 거부감이 꼽히는 것을 보면 일본에 대한 투자가 합리적인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오랜 기간 임금 상승이 정체되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상태다. 미국에 비해 낮은 생산원가로 공장 운영이 가능한 장점도 있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무너진 것은 과거 미국의 제재 때문이 아니라 R&D 소홀과 한국의 급부상 때문이었다고 회고하며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함도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 제재로 인한 전망을 내놓는데 사뭇 긍정적이다. TSMC와 미국의 고객사는 운명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다. TSMC는 서비스업 마인드를 바탕으로 파운드리 분야에서 고객과의 신뢰를 다졌다. 그뿐만 아니라 R&D에 매진하여 60퍼센트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압도적 제조력을 갖췄기에 엔비디아, 애플 등 빅테크 고객들은 자사 제품의 품질을 위해 TSMC에 칩 생산을 의뢰할 것이다. 미국의 제재로 칩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미국 기업들도 전방위적인 피해를 입는다.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조성된 반도체 업계의 분업화 구조는 상생의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여기서 미국의 제재에서 살아남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끝으로 저자는 화웨이를 분석함으로써 중국과의 경쟁 구도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화웨이는 중국 내에서 생산된 칩만을 사용한 제품을 설계해 미국의 제재에도 버텨내며 매출을 신장하고 있다. 화웨이의 사례는 R&D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TSMC의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