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롱 굿바이
모리타 류지
김영주
2017-11-13
248
127*188 mm
979-11-85585-45-1 (03300)
14,800 원
도서구매 사이트

“십 년 동안 아버지를 간병한 것은 십 년에 걸친 아버지와의 이별이기도 했다.”
독자와 평단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작가 모리타 류지!
그가 부모의 말년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써내려간 이별의 기록

모리타 류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90년의 데뷔작 『스트리트 칠드런(ストリート・チルドレン)』으로 노마문예신인상 후보에, 1992년에는 『사우다지(サウダージ)』로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 오르며 많은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중견 작가다. 2004년에 발표한 소설 『밤의 끝까지(夜の果てまで)』는 3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 그가 십 년 동안 알츠하이머 치매 아버지를 간병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산문집 『아버지, 롱 굿바이』로 처음 한국의 독자들을 만난다.

『아버지, 롱 굿바이』는 ‘착실한’ 간병 일기다. 스물네 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간병노인보건시설 ‘희망원’, 그곳에 아버지를 모시게 되면서 완전히 뒤바뀌는 작가의 일상은 인구의 28퍼센트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의 초상을 보여 준다. 그런 그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특별한 서문에는 부모를 간병한 경험자로서 전하는 소박한 위안과 당부가 담겨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의 손지훈 교수는 국내 치매 환자 돌보기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보충하는 해제를 덧붙이며 관련 기관의 최전선에서 연구하며 일하는 실무자로서의 현실적인 조언을 더했다.

 

롱 굿바이, 그 애틋하고 달콤한 말맛 뒤에 존재하는 현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알츠하이머병. 치매의 대표적 질환이기도 한 알츠하이머병은 잘 알려진 것처럼 고되고 느린 이별의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롱 굿바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별칭은 애틋하면서도 달콤한 말맛을 느끼게 하지만 과연 현실도 그와 같을까.

“네, 가와고에 시내에는 심신에 장애가 있는 고령자를 위한 특별양호 양로원이 다섯 곳이나 있어요. 현재 대기자가 구백 명 정도 있어서 조금 기다려야 하지만요.”

모리미 씨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곤 멀어져갔다.

그 말은 결국 특별양호 양로원에 있는 노인 구백 명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모리미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_ 본문 중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삶에 대한 의욕을 눈에 띄게 잃어버린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조현병을 앓는 동생과 치매 아버지의 동거는 불안하기만 하고, 이제 이 둘을 돌볼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는 모리타 류지뿐이다. 그가 기록한 이 십 년의 간병 일기에는 국가의 노인요양제도가 치매 환자가 있는 한 가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현실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그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한 가족의 개별적 서사와 고령 사회라는 구조적 서사 모두를 들여다보게 한다. 독자는 그 두 가지의 서사가 맞물리는 지점을 차분히 따라오도록 유도된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나’와 ‘내 가족’이라는 개별적 서사와 함께 ‘고령 사회’를 맞이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모리타 류지의 경험을 추체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의 나이 49세에 시작된 간병생활은 평온했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가정만을 돌보기도 빠듯한 중년의 전업 작가가 치매 아버지와 정실질환을 앓는 동생까지 돌보며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눈물을 흘리며 연재를 앞둔 소설도 포기한 그는 자신의 서재보다 간병노인보건시설과 병원, 관공서를 오가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늘 긴장해야 하는 간병생활의 고단함은 고집불통의 아이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의 혼란스러움을 제대로 추스를 수 없게 한다. 자신이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동생과 아버지를 설득하며 약을 먹이는 일이 날마다 반복되니 감정적 피로가 쌓인다. 입소 기간이 제한되어 있는 간병노인보건시설의 조건 때문에 몇 개월 단위로 입소와 퇴소를 반복해야 하는 일은 늘 다음을 전전긍긍하는 불안을 야기한다. 그러다 기어이 간병 스트레스의 한계를 알리며 찾아온 공황과 우울증까지…. 모리타 류지는 십 년이라는 시간, 그 내밀하고도 지난한 간병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한국이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7년, 그 경이적인 속도 앞에서 우리는 과연 준비되어 있을까

2000년에 이미 인구의 7퍼센트 이상이 65세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는 2017년에 들어 인구의 13.8퍼센트가 65세 이상의 노인으로, 14퍼센트를 기준으로 하는 ‘고령 사회’에 들어서는 문턱에 서 있다. 이 같은 고령 사회로의 진입에 프랑스가 115년, 미국이 73년, 일본이 24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한국의 17년은 경이적으로 빠른 속도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고령 사회 문제가 논의되며 최근의 치매국가책임제를 비롯해 환자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시범 시행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 마련을 진행 중이다.

제도를 만들고 공적 부조를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제도와 재정적 준비가 잘되어 있다 하더라도 환자 본인과 그 가족이 삶의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노인기 질환으로 인한 투병과 간병은 자칫하면 그 자체로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모리타 류지가 이 솔직하고 용감한 고백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투병과 간병의 과정이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간병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즐거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 배에 튜브를 연결해 영양을 주입해야 하는 위루형성술 여부를 보호자인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일 등 마치 자식과 부모의 역할이 뒤바뀌는 듯한 이런 상황은 치매 환자, 특히 부모를 간병하는 자식의 경우에 많은 심리적 혼란과 불안, 때로는 죄책감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장기간의 간병생활은 물질적 부담과 동시에 정서적 부담을 키우며 간병인의 삶을 압박해온다. 그러다 이내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이나 우울증까지 더해지며 한 가정 전체에 불행한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그러니 고령 사회를 살게 될 우리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간병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가 어떤 죽음을 원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죽음이라는 것은 간병을 시작한 뒤에 갑자기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_ 본문 중에서

작가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서문에서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간병 계획을 세우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말했지만, 고령 사회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이야기는 단순히 ‘누군가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모리타 류지의 에두른 당부처럼 아프기 전에, 혹은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투병과 간병, 그리고 이상적인 죽음과 같은, 그 차갑고도 따듯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