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높이는 일,
마음속 숨겨진 상처 직면하기부터 시작된다
혼자라도 괜찮은 삶은 가능할까? 남들의 시선, 자의반 타의반으로 얽히고 꼬인 관계들, 타인으로부터 ‘잘 살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소셜 미디어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까?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늘 괜찮다며 씩씩하게 돌아서서 혼자 아파하는 일이 반복되면, 탐정이라도 된 것 마냥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내 말과 행동에서 단서를 찾고 기억들을 들추어보게 되지만 같은 자리만 맴돌 뿐이다.
답이 나오지 않는 건 더 깊이, 더 멀리 내 과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말과 행동, 관계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실은 더 먼 과거, 즉 나의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무의식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성인이 되어서는 잘 기억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치명적인 감정들은 무의식에 새겨지고 사람들마다 다른 특정한 예민함을 만들어낸다.
남들의 시선, 나의 속마음, 무의식의 풍경…
공감의 언어로 치명적 상처를 보듬어주는 책
이 책은 어렸을 때 무의식에 새겨진 상처인 ‘심리도식’이 어떻게 자신만의 예민함을 만들어내고 은연중에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에 기인한 심리장애들 가운데 대표적이고 일상적인 우울, 불안, 긴장, 강박을 ‘남들의 시선’, ‘본인의 속마음’,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깊이 들여다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풍경들을 두루 살핀 뒤에는 애착 본능과 놀이 본능, 일차감정과 일차적 고통 등의 심리적 기제를 통해 본격적으로 치유 과정에 들어간다.
어려운 심리학 개념들이지만 저자는 당사자 입장에서 느낄 법한 감정들과 상황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공감의 언어로 일관하는 서술 방식은 심리학에 기반을 둔 자아실현의 본질을 다루는 후반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무의식에 대한 이해부터 홀로서기 행복론까지 넓고 깊게 나아가는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모순 가득한 인간의 심리와 세상의 본질을 연민으로 극복하고 나답게 사는 ‘마음의 독립’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몰랐던 상처를 직면해야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두 가지 키워드는 어린 시절과 무의식이다. 저자도 강조하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고 두렵게 할 수 있다. 오래 부정하고 외면했던 것들을 끄집어내 마주해야 하기에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가령 심리상담 기법 가운데 심상작업imagery work이 있다. 행복한 장면을 떠올려 표현함으로써 무의식에 자리 잡은 습성을 찾아보는 작업이다. 큰 감정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기껏 순수하고 행복한 심상을 다 그려놓고 눈물을 쏟아내는 경우가 있다. 상상에서라도 마음껏 행복하겠다는데 무의식 안의 고통스러운 덩어리가 불청객처럼 끼어들어 상상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경우들도 흔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들은 직면하고 표현해서 밖으로 ‘통풍’시켜야 사라질 수 있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감정 반응을 ‘일차감정’이라고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었을 때의 슬픔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슬픔을 회피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직면하고 마음껏 슬퍼하기에 이 감정은 서서히 강도가 옅어진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일차감정을 겪었지만 심리도식으로 자리 잡지는 않는다. 반면 애착을 상실하는 두려움이 심리도식으로 고착된 경우는 어떻게든 이 감정을 회피하려 애를 쓰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처와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껴야 획기적인 전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창의적 무기력Creative Helplessness”이다. 저자는 다양한 예와 당사자의 관점을 통해 이러한 심리적 기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모순으로 가득 찬 삶과 사회를 연민하는 것에서
홀로서기는 시작된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치유’가 아니다. 심리적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마음의 치유를 넘어 모순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과 세상을 연민으로 어루만지고, 자아실현의 본질을 묻는 작업까지 나아가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이나 학교 안에서 느껴지는 모순과 부조리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더 많은 모순을 맞닥뜨리게 되는데도 그 위에서 나름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게 된다. 다만 어린 시절 애착 욕구에 고착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모순에 더욱 아파하게 된다. 만일 타인의 결함이 자신의 행복을 해친다면 그건 의존이다. 삶과 사회의 모순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면 그것도 의존이다. 인간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측은한 마음으로 볼 때 비로소 가벼운 마음으로 ‘홀로서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아실현 역시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타인과의 조화 속에서 추구하는 인간애의 극대화라고 정의한다. 자아실현의 욕구과 관련되는 “개인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Transpersonal Needs”는 결국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형태로든 타인에게 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표현된다. 부모 형제와 그 자식들까지 포함한 온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먹여살리고 끝까지 돌보겠다는 포부, 사회에 굵직한 공헌을 하겠다는 야망, 아름다운 멘토가 되어 누군가의 삶에 길잡이가 되어주겠다는 바람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욕망이 진정한 행복과 자아실현으로 이어지려면 주위의 타인들과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능력의 순위가 아니라, 능력이 화목함에 기여하는 정도가 중요하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홀로서기란 세상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타인과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혼자서 설 수는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조화롭게 서는 것이 홀로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