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천사’들은 집 밖으로 걸어 나와
이 사회의 한가운데에 서기로 했다
헌정사상 최초, 임기 중 출산한 장하나 19대 국회의원은 〈한겨레〉에 칼럼 ‘장하나의 엄마 정치’ 연재를 시작하며 곳곳에 흩어져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던 엄마들을 호명했다.
“정치에 여성(엄마)들이 나서야만 독박육아를 끝장내고 평등하고 행복한 가족 공동체를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울한 여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의 아이들과 제 딸 두리에게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전해줄 수 있습니다. 저와 마음이 통하신다면, 이제 우리 만납시다.”
“이제 우리 만납시다” 한마디에 2017년 4월 22일, 외딴섬처럼 흩어져 각지에서 고군분투하던 엄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집 밖으로 나온 ‘가정의 천사’들은 당당히 이 사회의 한가운데에 서서 엄마 당사자로서의 목소리를 내기로 결의한다. 비관과 하소연에서 벗어나, 사회 구조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정치에 참여할 것을 다짐한다. ‘엄마 정치’를 표방하는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정치하는엄마들 회원 중 10명이 필자로 참여한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에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부터 지금까지의 1년이 고스란히 담겼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 과정에서부터 호칭의 정치에서 벗어나 서로를 ‘언니’라 부르며 끝없이 토론하는 등 정치하는엄마들만의 ‘스타일’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노동·보육·페미니즘·교육·공동체 분야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이 이어간 활동과 세상에 던지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공동대표 3인(이고은, 장하나, 조성실)의 대담으로 꾸려진 3부에서는 앞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주거·환경·영어 조기 교육 등의 첨예한 문제들과 함께 정치하는엄마들의 뒷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금방 지나가. 애들은 곧 클 거니까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텨”
라는 말이 격려가 되던 시대는 끝났다
정부에서는 ‘애국’과 ‘국가 위기론’을 들먹이며 출산을 장려하지만 육아는 철저히 개인, 특히 여성에게 전가되어왔다. 한 사회의 주인공을 남성 가장으로 상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사와 돌봄의 주체는 언제나 여성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은 임신하고 출산을 하는 순간 두 갈래의 갈림길에 놓인다. 일과 육아에 한쪽 다리씩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일상을 이어가거나, ‘이게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을 포기하는 것.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일-가정 양립’이란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티는 일’의 다른 이름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의 등장은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 구조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는, 극복해서는 안 된다는 엄마들의 배수진이다. 여성에게만, 엄마에게만 강요되는 부당한 희생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난하게 토론하며 하나의 목소리를 다듬어간다. 글을 쓰고, 시위에 나서고, 정책 토론회에 참여하고, 기자회견을 연다. 이는 “금방 지나가. 애들은 곧 클 거니까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텨”라는 말을 격려로 여기던 시대에 고하는 시원한 작별이다.
육아에는 모든 문제가 겹쳐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육아에 모든 문제가 겹쳐 있다고 말한다. 장시간 노동은 아이가 부모의 품에서 자랄 수 없게 하고, 각종 출산·보육 정책의 혜택은 실질적으로 배분되지 못해 유명무실하다. 육아휴직은 여성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고, 여성 노동자 안에서도 기업 형태나 고용 형태에 따라 사용률은 천지 차이다.
‘탁아 패러다임’에 머무른 보육 정책은 부모는 일하고, 아이는 맡겨지고, 기관은 아이를 떠안는 방식으로 설계돼왔다. 보육 정책의 기준은 언제나 보육의 주체를 엄마만으로 상정한다. 2016년, ‘무상 보육 도입과 함께 모든 아이에게 주어졌던 기존의 12시간 보육 체제를 취업모(12시간)와 전업모(6시간) 체제로 바꾸겠다’며 정부에서 발표한 ‘맞춤형 보육’이 대표적인 예다.
성불평등한 문화는 가사와 돌봄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문제가 발생한다. 성별 임금 격차는 자연스레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도록 만들고, 경제적 가장이 된 남성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육아에서 소외된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라도 육아는 ‘당연히’ 여성의 역할로 규정되어 ‘일도 가정도 놓치지 않는’ 슈퍼우먼 신화,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모성 신화가 강화된다. 사회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희생의 근본적 원인은 교묘히 은폐한 채, 개인의 지독한 노력으로 사회 구조의 모순과 불합리를 극복해낸 여성들을 치켜세우며 다시 한 번 가사와 돌봄을 여성의 영역에 단단히 붙박아둔다.
한편, 노동시간이 길고 저녁 없는 삶을 사는 부모들은 자식이 ‘헬조선’의 울타리를 조금이라도 뛰어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교육에 헌신한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 집중된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식을 체득할 시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지쳐가는 악순환의 반복. 정치하는엄마들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엄마가 정치를 하는 것뿐이라고 확신한다.
제20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 55세, 평균 재산 41억 원, 남성 비율 83퍼센트
애초부터 엄마들을 대변할 수 없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정체성은 간단하다. 엄마 당사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당사자 정치’다.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서 싸워주지 않는다는 걸 엄마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있고 공무원이 있는데, 정치하는엄마들은 왜 ‘아무도 대신해서 싸워주지 않는다’고 말할까? 20대 국회의 상황을 보자. 국회의원 평균 연령 55세, 평균 재산 41억 원, 남성 의원 비율이 83퍼센트다. 과연 이들이 ‘엄마’를 위한, ‘아이’를 위한 정책 입안과 실행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정치하는엄마들이 출연했던 2018년 5월 13일 자 SBS스페셜 ‘앵그리맘의 반격’ 편에서는 결혼-출산-독박육아-경력단절-황혼육아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집으며 126조 원을 쏟아부었다는 저출산 예산의 쓰임을 추적했다. 그 결과 ‘생일맞이 직원 청장과의 간담회’에 16억 7천만 원, 오카리나 교실 사업에 17억 6천만 원 등 저출산과는 무관한 곳에 무려 37조 원 이상이 쓰인 사실이 드러났다.
2018년의 한국 사회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의 등장은 새롭거나 놀랍기 전에, 마땅하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정의한 ‘집단모성’이란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는 엄마 혼자서 키울 수 없다. ‘엄마’라는 역할은 생물학적 엄마를 넘어서 아빠, 할머니, 이모, 삼촌 등 성별이나 연령에 무관하게 모든 성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나아가 국가와 사회 시스템 역시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우리의 사회는 좀 더 살 만해질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라야 우리의 아이들은 보다 잘 자랄 수 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엄마들로 시작됐으나 우리 모두의 정치인 이유
“뼈 빠지게 착취당한 우리 엄마들을 위해 모두 같이 묵념하겠습니다.”
신선한 묵념으로 시작했던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총회가 열린 지 1년이 지났다. 창립 직후부터 여성, 육아와 관련된 각종 사회 현안에 발 빠르게 움직인 정치하는엄마들은 칼퇴근법 추진, 한유총 집단 휴업 비판 성명, 문재인 대통령의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취원율 40퍼센트까지 확대’ 공약 이행 촉구, 특권학교 폐지 운동, 성평등 복지국가 개헌 촉구 기자회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의 비공개 정책 간담회, 서울시 저출산 대책 토론회 등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왔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바라는 사회는 비단 내 아이 한 명을 잘 키울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는 특정 집단, 특정 성별에 제한된 특혜가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향한 공공성이 구현되는, 서로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넘어선 사회다. 엄마들로 시작된 정치가 엄마만을 위한, 엄마만이 하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정치하는엄마들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