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은 임상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지만, 증거기반의학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책은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알려져 있는 증거기반의학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여러 주장을 검토한다. 또한 증거기반의학의 엄격한 정신이 임상의 모든 측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으며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를 제시한다.
● 증거기반의학은 왜 의료 전반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어야 하는가?
● 증거기반의학은 정말로 객관적인가?
● 무작위 시험 결과를 어떤 치료의 효과에 대한 보편적 증거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 증거기반의학은 개별 환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 기초 과학은 증거기반의학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 무작위 시험이 임상 전문가보다 중요한가?
의학의 주요 방법론으로 대두한 증거기반의학
철학의 정신과 증거기반의학의 정신은 서로 통한다. 철학은 통념을 의심하고, 체계적으로 반성하는 학문이다. 증거기반의학은 가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용 가능한 증거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증거기반의학이 현재 의료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무엇이든,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을 둘러싼 구체적인 논쟁들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간에, 증거기반의학은 그 정신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다행히 증거기반의학은 오늘날 의학의 주요 방법론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에게는 여전히 그 이름도 생소하며, 관심 있는 전문가들조차 기초과학과 그 방법론이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증거기반의학 창시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과학적 의학’으로 부르려 했으나 결국 ‘증거기반의학’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산되는‘증거기반’운동
‘증거기반’ 운동은 의학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증거기반정책’은 영미권에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당국의 실제 정책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통념을 의심하고 관련 증거를 모두 사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정신을 공유한다. 의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증거기반’ 운동이 퍼져나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 몸에 대한 여러 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말은 아직 충분히 증거에 기반을 두지 않고, 또 우리는 충분히 의심하지도 않으며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조직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실제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지적 운동이 필요하며 이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대상의 가치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증거에 대한 민감성,
이것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다
의학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함으로써 시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기대수명을 늘리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의학계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개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려 한다면 다양한 차원에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학계의 지형을 실질적으로 바꾸어온 ‘증거기반’ 운동이 한 가지 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의학계는 증거기반 운동의 발원지이면서 동시에 그 방법론이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역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철학의 부재’에 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결과중심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의 배후에 놓여 있는 그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환자 자신의 가치에 비추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인은 폭넓고 공정하게 증거를 수집, 종합하고 주어진 증거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추론을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에 관한 가치 판단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든 정책이든) 대상의 가치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증거에 대한 민감성, 요컨대 비판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