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진료실에서 이상한 의사를 만났다…”
까칠하고 비밀스러운 의사
동네 환자들의 은밀한 고백들
소소한 드라마에 담긴 작은 병들의 치유 이야기
하루가 다 저물어야 문을 열고 자정 넘긴 새벽에 문을 닫는 이상한 병원이 있다. 낮에는 병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지친 퇴근길에 문득 발견하는 그곳. 알 수 없는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콜센터 직원, 피로감이 예사롭지 않은 건설회사 영업부장, 불면증에 괴로워하는 편의점 사장, 아들 집에만 오면 기억을 잃는 어머니 등 환자들은 야심한 밤 진료실 문을 두드리고는 고백하듯 하루의 아픔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별 것 아니라며 달고 다니던 통증들을 더는 못 견디고 찾아간 동네 의원에 이상한 의사가 있다. 강박증 환자처럼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려야 환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반딧불 의원』은 늘 어딘가 아플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일터에서 겪는 통증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주고 병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의학 드라마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인 저자는 진료실에서 겪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하여 가상의 공간과 인물들을 창조했다. 깊은 밤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소한 감동과 치유의 드라마 속에서 일상의 아픔을 덜어낼 수 있도록 했다.
주인공 이수현은 야밤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넋두리처럼 풀어내는 아픔들을 세심히 살피며 조심스레 병의 연원을 우리 사회의 환부와 연결한다. 편의점 사장의 불면에는 최저임금 이슈와 꿈쩍도 하지 않는 본사 수수료, 꼬박꼬박 오르는 임대료 문제가 얽혀 있고, 건설회사 영업부장의 극심한 피로감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좇다보면 보통의 직장인들이 처한 ‘과로사회’의 면면을 들춰볼 수밖에 없다. 서서히 삶을 갉아먹는 이 작은 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 이수현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오래, 자주 듣는다. 환자들이 살아온 이력을 경청하고 그들에게 통증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나면 치료는 의외로 별 것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처방전을 받기도 전에 마음이 가벼워져 진료실 문을 나선다. 까칠해 보이지만 은근히 환자의 마음을 살피고 그들의 편에 서서 공감의 언어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티브이, 서점가에 쏟아지는 잘못된 건강 상식들
속 시원히 밝혀주는 반딧불 의사의 말
피로는 정말로 간 때문일까? 궐련형 전자담배는 정말 담배보다 나을까? 심해지는 건망증 혹시 치매 초기 증상은 아닐까? 고혈압 약은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걸까? 밥 대신 버터가 범벅된 고기에 흘러나온 기름까지 마시는 게 다이어트에 특효라는 다큐멘터리는 사실일까? 임신한 사람은 독감 주사를 꼭 맞아야 하나, 절대 맞으면 안 될까? 식탁 위에 수북한 비타민제를 안 먹어도 된다는 거 사실일까?
마실 가듯 반딧불 의원을 찾는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이다. 깊은 밤 반딧불 의원에 가면 세간의 잘못된 통념에 갇혀 정반대로 알고 있던 것들이나, 조금은 부끄러워 어디 물어볼 곳 없었던 것들, 혹은 간단히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질문을 올려보면 모두 다른 대답에 머릿속만 복잡해지는 것들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저자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사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올바른 의학 지식을 얻도록 하는 한편, 각 에피소드의 끝에는 반딧불 의원의 진료실에서 다 다루지 못한 건강 지식들을 정리해두었다. 통계와 의학 논문 등 자료를 들춰가며 잘못 알려진 의료 정보를 바로잡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넘쳐나는 건강 정보들 가운데 정작 본인에게 맞는 지식을 찾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는데, 이는 『반딧불 의원』의 집필 동기이기도 하다.
“글을 쓰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정보는 넘쳐납니다. 뉴스나 잡지의 한두 꼭지 정도는 항상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티브이 채널을 돌리면 언제든 몸에 좋은 음식이나 건강관리 방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찾는다면 컴퓨터 앞에서 몇 분 만에 최신 당뇨병 치료 지침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체계적인 지식이 부족한 환자 입장에서 막상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풍요 속의 빈곤은 공급자 중심의 정형화된 정보 위주인 것에 책임이 있겠지만, 서사의 부재 역시 이유가 될 것이라 봅니다. 제 자신, 또는 아는 사람을 통해 경험한 질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이 책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질병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고자 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저자의 말」에서)
‘반딧불 의원’은 우리 주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동네 어귀에서, 아파트 상가에서, 번잡스러운 시장통 건물에서, 야간 진료와 휴일 진료를 마다하지 않는 의원들이 모두 ‘반딧불 의원’이다. 그러나 동네 의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질병을 가진 대부분의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만 몰리는 덕분에 ‘반딧불 의원’은 앞으로 만나기 어려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주치의 같은 이웃 의사에게 나와 내 가족의 건강에 대해 자주 대화할 수 있는 동네 의원. 그것이 바로 ‘반딧불 의원’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고 싶은 바람직한 의료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