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소
루이 알튀세르
배세진
2018-11-06
448
153*225 mm
979-11-85585-58-1 93160
23,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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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자본주의의 위기와 알튀세르라는 유령의 소환

 

왜 지금 다시 알튀세르인가?

 

최근 들어 1990년 사망한 알튀세르의 유고가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철학·정치학 저술』의 영역본 편집자였던 고슈가리언(G.M. Goshgarian)이 유고집 편집 작업을 맡으면서, 이 책 『검은 소: 알튀세르의 상상 인터뷰』를 포함하여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수주의자가 된다는 것』, 『무엇을 할 것인가』, 『역사에 관하여』 등 5권이 출간되었으며, 또 다른 유고집도 출간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잇따른 알튀세르 유고들의 출간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이어진다. 유고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알튀세르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더해줄 것인가?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언가 새롭고 시의성 있는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위기를 구성해 왔던 것은

위기를 드러나지 않도록 억압하고 가짜 해법으로 그것을 봉쇄해 왔던 것

 

알튀세르는 1977년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한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라는 유명한 강연에서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고 선언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을 일종의 해방의 기회로, 쇄신과 부활의 기회로 간주했다.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 마침내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는 그 위기의 요소들을 분명하게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위기를 통해서,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결정적인 어떤 것이 해방될 수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위기를 구성해왔던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가 위기로서 드러나지 않도록 억압하고 그것을 가짜 해법으로 봉쇄해 왔던 것이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 책에서 소련 공산당을 비롯한 동유럽과 서유럽의 공산당이 스탈린주의를 스탈린이라는 폭군 또는 독재적인 지도자의 개인적인 일탈과 전횡의 문제로 간주함으로써 당과 조직, 더 나아가 이론적 난점에 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와 개조의 시도 없이 실용적인 타협을 시도했다고 비판한다. 역으로 스탈린주의에서 기존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우파적인 비판가들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주의’, 당의 관료적 지배체제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도입하는 해법을 중시하였다. 이에 대해 알튀세르는 초기 저작에서부터 줄곧 이러한 우파적 비판을 넘어서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파적 비판’을 모색하고자 했다.

 

알튀세르는 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하는가

 

알튀세르는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이 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자, 이를 격렬히 비판하며 당 정치에 직접 개입하려고 시도한다. 그 결과물이 알튀세르의 저작 중 가장 정치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이 책 『검은 소????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하고자 하였는가? 알튀세르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파적 비판’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시킨다. 그에 따르면, 서유럽 공산당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와 달리 자신들은 ‘자유’를 중심에 두고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를 허용하며,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길을 추구하겠다고, 따라서 그들과 다른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를 오류라고 비난하고 회피할 뿐 왜 그러한 오류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러한 오류가 정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 때문인지 제대로 설명하거나 토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알튀세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옹호하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공통점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 책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유래하는 ‘검은 소’라는 제목은 컴컴한 그믐밤에 검은 소들이 어떤 게 어떤 것인지 서로 구별되지 않듯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기로 한 프랑스 공산당의 결정은 프랑스 공산당이 어떤 게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이고 어떤 게 이데올로기인지, 어떤 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이고 어떤 게 스탈린주의적 독재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든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하든

알튀세르로 되돌아가 알튀세르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거의 20여 년간 이른바 ’포스트 담론’이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했다고, 혹은 이 포스트 담론이 마르크스주의와 이론 내적인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도래 이후에 행해진 20여 년간의 실험이 무의미했던 것은 전혀 아니며, 이러한 실패의 교훈으로부터 포스트 담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결합을 다시 한 번 시도해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 하에서 그러한데, 그것은 바로 알튀세르의 사상을 진지한 사고의 재료로 삼는다는 전제 하에서 그러하다.

점점 더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들의 필요불가결한 사유의 도구상자로 요청되는, 전 세계적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지금의 정세 속에서, 알튀세르라는 유령이 끊임없이 소환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이론적 실천을 하든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으로 실천하든, 결국 알튀세르로 되돌아가 알튀세르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