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불평등에 맞서다
조너선 D. 오스트리 · 프라카쉬 룬가니 · 앤드루 버그 지음
신현호 · 임일섭 · 최우성
2020-01-31
272
152*225(신국판) mm
979-11-85585-83-3 (93320)
18,000 원
도서구매 사이트

성장을 위해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는

경제학의 가르침은 유효한가?

 

2020년 1월, 옥스팜Oxfam은 연례 불평등 보고서에서 놀라운 통계를 제시했다.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수퍼리치’에 해당하는 최상위 부자 2,153명이 전 세계 인구의 약 60%에 해당하는 46억 명보다 더 많은 부(富)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불평등을 그동안 경제학은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경제학 교과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이유를 그 사람이 사회에 더 많이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소득 불평등은 공정한 결과물이고, 각자가 얻는 보상은 생산성에 따른 것이며,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소득을 재분배하면 열심히 일할 동기를 사라지게 해서 경제의 효율성이 훼손된다고 한다. 경제성장의 혜택이 처음에는 일부 계층에게 편중될 수 있겠지만 결국은 모든 경제 주체에게 퍼져나간다고 여긴다.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주류 경제학의 세상과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임금과 중위소득은 생산성과 함께 상승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많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생산성은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중위소득은 정체했다. 마찬가지로 부유한 국가뿐만 아니라 소득이 높지 않은 국가에서도 노동소득 분배율은 감소했다. 누군가 약속했던 경제성장은 오지 않았고, 경제위기의 파고가 일렁였다. 소득 분배는 도리어 악화되었고, 점점 더 심화되는 불평등은 사회적·정치적 불안의 도화선이 되었다.

 

여기 이 책《IMF, 불평등에 맞서다Confronting Inequality》는 국제통화기금IMF 소속 경제학자 세 명이 불평등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이 책의 공저자인 조너선 D. 오스트리Jonathan D. Ostry, 프라카쉬 룬가니Prakash Loungani, 앤드루 버그Andrew Berg는 10여 년 전부터 소득 불평등 문제에 주목해 왔다. 특히 저자들은 2007~2008년의 세계 경제 대침체를 목도한 뒤에 IMF의 기존 정책 방향을 재검토하고, 불평등 연구를 진행하면서 IMF 내에서 ‘반성적 성찰’의 목소리를 꾸준히 높여 왔다. 이들은 불평등은 성장에 반드시 필요하거나 유리하게 작동하기는커녕 경제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구체적인 연구 자료를 통해 증명해 낸다. 또한 저자들은 부자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를 하는 것이 결코 성장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상세한 그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소득 재분배는 지나치게 과도하지만 않다면 경제성장에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사회가 좀 더 평등해질 때 성장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입을 모은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였던 IMF가

불평등에 주목하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는 민중 시위가 발생해 삽시간에 정권이 무너졌다. 당시 튀니지 거시경제 지표는 양호했고 개혁이 진전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IMF 관계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튀니지 시위는 곧이어 아랍 전역에서 경제적 평등 확대를 요구하는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이어졌다. 불평등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특정 지역에서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양상이 아니었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시민들이 2011년 9월,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로 들고 일어났다.

IMF 총재는 워싱턴에서 고위 간부들과 회의를 열고, “왜 우리는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이슈에 대해서 IMF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그동안 IMF는 성장과 세계 통합을 촉진한다는 사명을 갖고 국제적으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기관이었다. 반면에 ‘불평등 확대’나 ‘99퍼센트의 요구’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본 이동의 자유화가 경제성장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분별한 자본 이동 허용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성장과 형평성 측면 모두에 유해할 수 있다는 증거들이 쌓여 갔다. 그러면서 IMF의 입장도 미묘하게 변화했다. 특히 이 책의 대표 저자인 조너선 오스트리의 금융세계화와 불평등에 관한 연구들은 IMF의 입장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 사람들은 과거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인간의 얼굴을 한 IMF’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바마가 인용한 연구는 뜻밖에도 IMF에 소속된 이 책의 저자들이 수행한 연구였다. 전통적으로 주류 경제학자들—IMF의 학자들을 포함하여—은 평균소득의 증가 여부에 더 큰 관심을 보였고, 늘어난 소득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분배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경제학자들은 효율성efficiency—전체 파이의 크기가 계속 커지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 반면에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조각의 크기, 즉 형평성equity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제1장 서론, 17~18쪽에서

 

우리의 연구를 통해 IMF가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또 IMF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IMF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오늘날 IMF는 불평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핵심적인 사항으로 고려하라고 권고한다. 또 IMF는 업무 전반에 걸쳐 지나친 불평등에 도전하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 서문, 13쪽에서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지속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저자들의 분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불평등이 심한 나라들에서는 경제성장이 종결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의 지속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매우 많지만, 그 요인 중 하나인 불평등의 경우 그 효과가 크다. 가령 남미 경제가 동아시아처럼 불평등 격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면, 그들의 성장기는 지금의 2배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불평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다. 전 IMF 총재였던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rgarde는 “지나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일 뿐 아니라, 경제학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소득 분배가 평등한 나라일수록 성장기도 오래 지속된다. 실제로 소득 분배와 불평등은 성장의 지속 기간과의 연관성이 가장 뚜렷한 요인이다. 불평등은 위에서 언급한 다른 요인들을 포함하더라도 통계적, 경제학적 유의성을 잃지 않는다. 이는 불평등이 그 자체로 문제이며, 불평등을 통해 다른 요인들의 영향이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제3장 불평등과 성장의 지속, 63쪽에서

 

많은 구조 정책들이 효율성에 기여함으로써 평균소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증거들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정책들의 상당수가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그로 인해 형평성과 효율성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평균소득의 증가를 근거로 개인들 간의 소득 불균형 확대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제1장 서론, 27쪽에서

 

새로운 경제 모델을 향한 IMF 경제학자들의 도전!

 

이 책《IMF, 불평등에 맞서다》 해제를 쓴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인 이상헌은 “IMF를 비롯한 세계경제기구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가 다루지 않았거나 부차시했던 소득 불평등 문제를 경제정책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을 높이 사면서 “정책 규율이 심하고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힘든 IMF와 같은 기구에서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이들의 선구적인 연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IMF, 불평등에 맞서다》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에 좋은 나침반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불평등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이를 통해서 기존의 거시경제정책에 정면 도전하면서 (암묵적이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경제정책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기존 정책’이라 함은 IMF가 그동안 회원국에게 요구해 왔던 정책 틀도 포함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저자들은 2016년에 이 정책 틀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 부르면서, 그간 이런 유의 정책은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잉 판매oversold’되었다고 주장했다.

해제, 197쪽에서

 

오늘날 국제적으로 번성하는 대도시와 세계화로 고통받는 지역 간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 틈새로 포퓰리스트적인 정치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사람들 간의 격차가 커져 가는 불평등의 시대에는 당위성과 행동의 격차도 크다. 불평등 확대가 경제, 사회,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정책적 대응을 더는 늦출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대응은 미미하고 느리다. 이런 현실 속에서《IMF, 불평등에 맞서다》는 기존의 거시경제정책에 정면 도전하면서 새로운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즉 우리 사회는 보다 포용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